..
페이지 정보

본문
Ⅵ. 수행지도(修行地圖) ‒ 2) 관련 경전
『초기불교 경전백선 독송집』 ‘제6장 수행(修行) ‒ 지도(地圖)’에 속한 여러 경은 수행지도의 골격을 구성하는 주제들을 소개하는데, (아침독송 발췌 250814~26)에서 정리하였습니다.
|
▣ (아침독송 발췌 250814~26) 수행지도(修行地圖)[삼매가는 길 → 내적인 심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 해탈지견](해피스님 250828)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7&wr_id=16
|
[1] 아침독송(250814) ‒ (AN 11.1-어떤 목적 경)[수행지도의 골격 ‒ 계에 둘러싸인 법의 호수 & 삼매의 목적 = 깨달음(여실지견-해탈지견)](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87
참조 : 그림 1. 수행지도 개념 & 그림 5. 수행지도의 골격 ‒ (AN 4.41-삼매수행 경)
1. 단계적 완성(구차제주)으로 나아가는 점진적 과정
(AN 11.1-법의 목적 경)은 수행지도의 골격을 알려줍니다. 계에 둘러싸인 법의 호수에서 목욕하는 과정(*)을 점진적으로 설명하는데, 개발된 느낌의 과정으로의 삼매 가는 길(환희 → 희열 → 진정 → 행복 → 삼매)과 삼매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두 단계의 깨달음(여실지견 → 해탈지견)입니다.
(*) 수행의 본질은 버림인데, 법의 호수에서 목욕하여 내면의 오염원을 씻어내는 것이고, 그렇게 비워져 상(想)의 작용성인 번뇌까지 없는 상태로의 공(空)의 실현입니다.
; ①유익한 계(戒) ‒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보호 → ②뉘우침 없음
• 계를 지니지 않는 삶 ‒ 법(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가르침)의 호수 밖의 삶 → 목욕하지 못함 ⇒ 강물에서 하는 밖의 목욕으로 안의 오염원을 씻어내지 못함 ‒ 불교와 바라문교의 차이
→ ③환희-④희열-⑤진정-⑥행복 ‒ 개발된 느낌(행복의 과정) = 삼매 가는 길
→ ⑦삼매 ‒ 올라가는 수행이지만 벗어남(깨달음)을 위한 토대
; 벗어나는 수행 : → ⑧여실지견 = 1단계의 깨달음 ‒ 행(行)들에 대한 (무상-고-무아의) 앎과 봄 = 사념처의 완성(완성된 사띠 = 사띠토대) = abhiññā(실다운 지혜) ‒ 예류자
→ ⑨염오 → ⑩이탐 ‒ 사마타 = 심해탈
→ ⑪해탈지견 = 깨달음의 완성 ‒ (해탈의 흔들리지 않음 → 태어남의 끝 → 존재의 소멸)인 (락-무아의) 열반에 대한 앎과 봄 = 위빳사나의 완성 ⇒ 부동의 심해탈 ‒ pariññā(완전한 지혜) ‒ 아라한
2. 삼매의 목적과 이익이 여실지견이라는 설명은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의 구조를 잘 설명해 줍니다.
3. 여실지견(如實知見) ‒ 행(行)들의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사실 그대로 알고 봄
4. 해탈지견(解脫知見) ‒ (해탈의 흔들리지 않음 → 태어남의 끝 → 다음의 존재 없음)으로 벗어나 실현되는 락(樂)-무아(無我)의 열반을 알고 봄 즉 해탈된 삶의 실현
; 그리고 나에게 지와 견이 생겼다. ‒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5. 계가 삼매의 토대가 되고, 삼매가 벗어나는 수행의 토대가 되듯이, 세상을 구성하는 법인 행들에 대한 여실지견도 세상에서 벗어난 열반의 실현을 위한 토대가 됩니다.
[2] 아침독송(250818) ‒ (SN 47.44-사띠 경), (SN 47.2-사띠 경), (SN 47.35-사띠 경)[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 ‒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계보](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1
참조 : 그림 1. 수행지도 개념 & 그림 2. 수행지도 ‒ 단계적 치유 : 구차제주(九次第住)
& 그림 9. 삼매수행에서 대상의 전개 − 「상(nimitta) → 심상(心相-cittassa nimitta) → 드러나는 법(法)」
같은 제목의 사띠 경 3개는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 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이어지는 가르침(가르침의 근본)이다.’라는 같은 주제를 설명하는데, 사념처와 바른 앎의 두 자리입니다.
; 이어지는 가르침의 포괄 = 팔정도 ‒ 깨달음을 위한 유일한 길(다른 방법 없음) → 필수품을 갖춘 삼매를 닦음 →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 → 번뇌의 부서짐 → 누진(漏盡) 아라한
• 이어지는 가르침 (1)(SN 47.44-사띠 경) sato vihareyya(사띠를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 ‒ 사념처
• 이어지는 가르침 (2)(SN 47.2-사띠 경) sato vihareyya sampajāno(사띠를 가진 자, 바른 앎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① ‒ 사념처와 sampajānakārī(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는 자) → 1차 인식에서 눈뜨고 옳고 그름을 판단함 = 필수품의 과정
• 이어지는 가르침 (3)(SN 47.35-사띠 경) sato vihareyya sampajāno(사띠를 가진 자, 바른 앎을 가진 자로 머물러야 한다)② ‒ 사념처와 법의 위빳사나 → 드러난 법에서 눈뜨고 옳고 그름을 판단함 = 법의 위빳사나
; 대상의 전개 ‒ 「①호흡(相-nimitta) = 신행의 진정 → ②수(受-cittassa nimitta) = 심행의 진정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③드러나는 법 = 법의 위빳사나 ⇒ 무상(無常)의 관찰 → 여실지견」
이때, 이어지는 가르침의 의미를 설명하였는데, 위빳시 부처님으로부터 깟사빠 부처님을 거쳐 고따마 부처님에 이르는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계보의 형성입니다. 특히, 고따마 부처님이 깟사빠 부처님의 제자였기에(*) 초선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이것이 깨달음의 길’이라고 판단하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 (MN 81-가띠까라 경) ‒ “아난다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그때 젊은 바라문 조띠빨라는 참으로 다른 사람이었다.’라고. 그러나 아난다여,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한다. 내가 그때 젊은 바라문 조띠빨라였다.”
(**) (MN 85-보디 왕자 경) ‒ tassa mayhaṃ, rājakumār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eseva maggo bodhāyā’ti 그런 나에게. 왕자여,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식(識)이 있었다. ‒ ‘오직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한편, 이런 계보의 형성 과정을 감안하면, 부처님도 스승 없이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전생의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깨달음의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내용은 지금 우리가 바르게 가르침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제시하는데, 지금 깨닫지 못해도 다음 생에 공부를 떠올리고 이어가서 깨달음을 성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AN 4.191-들어서 앎 경) ‒ 지금 공부의 다음 생에서의 연속성
[3] 아침독송(250819) ‒ (AN 4.41-삼매수행 경)[수행지도의 골격 ‒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 → 지와 견으로 이끎의 의미](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2
참조 : 그림 2. 수행지도 ‒ 단계적 치유 : 구차제주(九次第住) & 그림 5. 수행지도의 골격 ‒ (AN 4.41-삼매수행 경)
(AN 4.41-삼매수행 경)은 수행지도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을 포괄합니다.
; 올라가는 수행 = 존재(有-bhava) → 벗어나는 수행(vibhava → 존재의 소멸)
; 올라가는 수행의 쓸모 = 벗어나기 위한 토대 → 단계지어진 수행(구차제주) → 각 단계에서의 단계지어진 벗어남(부정적 요소의 단계적 해소)
올라가는 수행은 초선~상수멸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올라가면서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필수품을 갖춘 삼매인 정정(正定-바른 삼매)인데, 개발된 느낌의 과정이어서 ①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벗어나는 수행은 올라가는 수행이 제공하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서 무상-고-무아인 행들의 여실지견으로의 1단계 깨달음과 락-무아인 열반의 실현으로의 해탈지견을 실현하는 수행입니다.
이때, 여실지견은 내면에서 제3의 법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벗어남을 위해서는 법을 드러내 주어야 하는데(현상의 영역 : 마라의 지배 영역 → 사실의 영역 : 마라의 영역에서 풀려남), 내적인 心의 사마타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心의 사마타로 법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 ②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 수행지도(修行地圖)의 골격① - (AN 4.41-삼매수행 경)의 4단계[(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 → 지와 견 → 염-정지 →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250305) 참조
; (아침독송 발췌 250404) 신념처경(2) ‒ 법의 드러남[내적인 心의 사마타 = 知와 見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 수행](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참조
그리고 드러난 법에서 무상을 관찰하여 여실지견에 이르는 과정은 법의 위빳사나인데, ③염(sati)-정지(sampajañña)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이때, 염(念-sati)은 드러나는 법에 대한 눈뜸이고, 정지(正知-sampajañña)는 무상의 관찰인데, 각각의 완성으로 이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여실지견(행들의 무상-고-무아)하는 과정이 사념처의 완성 과정이고 완성된 사띠에 의한 사띠토대가 갖추어진 예류자의 성취입니다.
사띠토대 위에서 번뇌를 부수는 과정은 사마타(염오-이탐)와 위빳사나(소멸)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삼매와 지혜를 완성하여 심해탈-혜해탈하면 부동의 심해탈로 완성되는데, 해탈지견(해탈의 흔들리지 않음 → 태어남의 끝 → 다음의 존재 없음)이고, 락-무아의 열반을 실현한 아라한의 성취입니다. 이 과정이 오온의 자라남-줄어듦(생겨남-무너짐)의 관찰에 의한 ④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특히, (AN 4.93-삼매 경2) 등은 내적인 心의 사마타도 얻고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사람은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하여 이런 골격의 타당성을 확인해 줍니다.
[4] 아침독송(250820) ‒ (AN 4.92-삼매 경1), (AN 4.93-삼매 경2), (AN 4.94-삼매 경3)[수행지도의 골격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3
참조 : 그림 1. 수행지도 개념
& 그림 9. 삼매수행에서 대상의 전개 − 「상(nimitta) → 심상(心相-cittassa nimitta) → 드러나는 법(法)」
(AN 4.41-삼매수행 경)은 수행지도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을 포괄합니다.
1. 이 골격 위에서 3개의 삼매 경은 내적인 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특히, 내적인 심의 사마타가 무엇이고, 법의 위빳사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내적인 心의 사마타 ‒ 도반이여, 참으로 心을 어떻게 진정해야 합니까? 心을 어떻게 가라앉혀야 합니까? 心을 어떻게 집중해야 합니까? 心을 어떻게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
• 법의 위빳사나 ‒ 도반이여, 참으로 행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행들을 어떻게 철저히 알아야 합니까? 행들을 어떻게 통찰해야 합니까?
; 내적인 心의 사마타는 (AN 4.41-삼매수행 경)의 ②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데, 여실지견과 해탈지견으로의 깨달음을 위한 조건의 확보입니다. 이런 지견은 사실의 영역에서 진행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의 영역을 진정함으로써 법을 드러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법을 드러나게 하여 두 가지 지견을 얻기 위한 조건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내적인 심의 사마타가 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입니다. 【컵의 비유 ‒ 수행에서 대상의 전개】로 설명하였습니다.
【컵의 비유 ‒ 수행에서 대상의 전개】 ⇒ 「Ⅳ 수행지도(修行地圖) ‒ 1) 설명 [5] 삼매수행에서 대상의 전개」 참조(598쪽)
2. 법의 드러남의 의미
법이 드러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바닷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보기 위해서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깊이만큼 내가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들은 나에게서 자기의 존재를 감추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의 존재성에 따라 제 있을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sandiṭṭhika dhamma – 스스로 보이는 법). 그래서 내가 그의 존재성에 맞춰 그가 있는 자리로 가까이 가면 자기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보여줍니다(ehipassika dhamma – 와서 보라는 법). 이렇게 내가 그들의 존재성으로 접근하면 법들은 의도적 감춤 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같은 의미를 물질의 존재 구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분자 → 원자 → 핵과 전자 → 양성자-중성자 → … → 쿼크」 등 존재의 미세한 구성 요소는 옛날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과학기술이 그 미세함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에 접근치 못해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보는 능력이 향상되자 그 미세한 존재 영역의 것들도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스스로 보이는 법들은 와서 보는 시도를 통해 이렇게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도 그렇습니다.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면 초선을 구성하는 법들이 자기를 드러내 보여줍니다. 내적인 心의 사마타로 心을 안으로 진정시키면 그 진정을 조건으로 안에서 드러나는 법들이 있는 것입니다. 내지 상수멸을 성취해 머물면 상수멸까지 남아있는 법들(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해 머물 때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법들)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그 법들에 대한 법의 위빳사나로 여실지견한 뒤 사마타-위빳사나의 과정으로 완성됩니다(지혜로써 보아 번뇌 다함).
3. 내적인 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갖춘 사람은 그 유익한 법들에서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쌍이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번뇌들의 부서짐(사마타-위빳사나 = 명으로 연결된 법들)을 위한 선행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한편, 이 경들은 역의 순서 즉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는 얻었지만 내적인 心의 사마타는 얻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데, (AN 4.170-쌍 경)의 위빳사나가 선행한 사마타를 닦는 경우와 같습니다. (MN 64-말루꺄 큰 경)은 이런 길과 이런 실천 위에서 누구는 심해탈하고 누구는 혜해탈하는 것은 기능의 차이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삼매의 기능보다 지혜의 기능이 앞 선 수행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주제입니다.
[5] 아침독송(250821) ‒ (AN 2.22-32-어리석은 자 품) 32.[수행지도의 골격 ‒ 사마타와 위빳사나 & 6차 결집본과 PTS본의 차이의 예](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4
참조 : 그림 7. 딱까를 중심에 둔 수행지도(修行地圖)
(AN 4.41-삼매수행 경)은 4단계로 수행지도의 골격을 제시하는데,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을 포괄합니다.
1. 이 골격 위에서 3개의 삼매 경은 내적인 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설명하는데, 특히, 내적인 心의 사마타가 무엇이고, 법의 위빳사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②내적인 心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③염-정지로 이끄는 삼매 수행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 사념처의 완성 = 사띠의 완성 = 사띠토대(satiāyatana)
2. 내적인 心의 사마타와 법의 위빳사나를 갖춘 사람은 그 유익한 법들에서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쌍이 수행의 완성이 아니라 번뇌들의 부서짐(사마타-위빳사나 = 명으로 연결된 법들)을 위한 선행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AN 2.22-32-어리석은 자 품) 32.는 명(明)으로 연결된 법들로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소개합니다. ‒ 누진(漏盡-번뇌들의 부서짐 = 소멸(nirodha)) = 번뇌들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김 ⇒ 딱까(애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 필요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명(明)과 연결된다. 무엇이 둘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심(心)이 닦아진다. 심을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탐(貪)이 버려진다.
; 삼매의 완성 과정 = 사마타 ‒ [염오(소망의 해소) + 이탐(탐의 해소)] → 애멸(愛滅) → 심해탈(心解脫)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지혜가 닦아진다. 지혜를 닦을 때 어떤 이익을 경험하는가? 무명(無明)이 버려진다.
; 지혜의 완성 과정 = 위빳사나 ‒ 소멸(nirodha) = 누진(漏盡) →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김 = 무명의 멸 → 혜해탈(慧解脫)
; 심해탈-혜해탈(혜해탈이 받쳐주는 심해탈)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 깨달음의 완성 → 아라한
비구들이여, 탐에 오염된 심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진다[닦아지지 못한다(PTS)]. 이렇게, 비구들이여, 탐의 바램으로부터 심해탈이 있고, 무명의 바램으로부터 혜해탈이 있다.
사념처는 사띠, 사마타는 삼매, 위빳사나는 지혜의 완성 과정입니다. 사념처로 여실지견하여 딱까에 접근한 뒤 사마타로 ①염오(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음)하여 소망의 문제를 해소하고, ②이탐하여 탐(가치 앎)의 문제를 해소하면 심(앎)이 애로부터 해탈합니다(心解脫). 그리고 위빳사나로 ③소멸(번뇌들의 부서짐으로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남)하여 무명(존재 앎)의 문제를 해소합니다(慧解脫). 심해탈은 혜해탈에 의해 탐(가치 앎)의 아래에서 작용하는 무명(존재 앎)의 문제가 해소되어야 흔들리지 않게 되는데, 부동의 심해탈입니다.
이렇게 삼매의 완성 과정인 사마타에 의해 성취되는 심해탈은 지혜의 완성 과정인 위빳사나에 의해 혜해탈이 성취되어야 부동의 심해탈로 완성됩니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아라한입니다.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의 삶에서 사마타로 애를 해소하고, 위빳사나로 무명을 해소할 때 벗어나(解脫) 불사(不死)와 열반(涅槃)을 실현하는 깨달음으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에는 6차 결집본과 PTS본 사이에 심각한 차이가 있습니다. ‘탐(貪)에 오염된 心은 해탈하지 못한다.’에 이어 무명(無明)에 오염된 지혜가 닦아질 수 있는지의 여부입니다.
• 6차 결집본 ‒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bhāvīyati. 비구들이여, 탐에 오염된 心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진다.」
• PTS본 ‒ 「Rāgupakkiliṭṭhaṃ vā bhikkhave cittaṃ na vimuccati. Avijjupakkiliṭṭhā vā paññā na bhāvīyati. 비구들이여, 탐에 오염된 心은 해탈하지 못한다. 또는 무명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지지 못한다.」
이 문제는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의 「paññā bhāvetabbā, viññāṇaṃ pariññeyyaṃ 혜(慧)는 닦아야 하는 것이고, 식(識)은 완전히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기능인 혜의 닦음에 의해 식은 완전히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심은 해탈해야 하는 것(心解脫)인데, 혜의 닦음에 의해 식이 완전히 알려지듯이, 혜의 닦음에 의해 심은 완전히 해탈하게 된다는 이해입니다(부동의 심해탈). 그래서 탐이 남아있으면 애가 해소되지 않아 심이 해탈할 수 없는 문제를 혜를 닦아 무명을 해소하는 수행을 통해 탐을 완전히 부수면 애의 부서짐에 의해 심은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명에 오염된 지혜는 닦아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즉 무명의 오염이 남아있는 지혜를 위빳사나로 닦아서 완성함으로써 무명이 부서지고, 그때, 탐도 완전히 부서져 심의 해탈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명에 오염된 혜를 닦는 것이 위빳사나입니다. 만약 무명에 오염된 혜가 닦아지지 못한다면 무명을 부수는 방법은 없고, 깨달음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차이는 PTS본이 틀렸고, 6차 결집본이 맞습니다.
[6] 아침독송(250822) ‒ (SN 54.1-하나의 법 경), (SN 54.2-각지 경)[수행지도의 골격 ‒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16과정과 칠각지] & 포살(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5
참조 : 그림 8. 사념처(四念處)의 개념[행위적 앎과 염처(念處)의 관계]
& 그림 10. (MN 118-입출식념 경)의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16단계 분석
(SN 54-들숨-날숨 상윳따)의 처음 두 개의 경은 수행의 중심 개념의 관점에서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16단계로의 사념처의 완성과 칠각지를 닦는 과정으로의 사마타-위빳사나를 설명합니다.
(MN 118-입출식념 경)은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16단계를 4단계씩 구분하여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성취로 설명하는데, 수념처와 심념처 부분의 해석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⑤-⑥은 내입처-외입처-식의 삼사화합에 의한 개발된 느낌의 과정인데, 알고 경험하는 것으로의 1차 인식에서 아는 과정인 신념처(호흡의 유지)에서 경험으로 중심을 옮기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중심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2차 인식으로 수행의 자리가 전환되는데, ⑦심행(心行)의 경험이고(주관=識/객관=受/공동주관=想 → 心行=想-受), ⑧심행의 진정에서 초선~무소유처의 상(想)의 증득 과정으로 심상(心相 = 受)을 붙잡은 삼매의 과정이 올라갑니다.
1차 인식에서 2차 인식으로 전환하며 심화하는 수행은 심행(心行)에 이어 ⑨에서 심(心)을 경험하게 되고, 식-수-심의 두 번째 삼사화합에 의한 개발된 느낌을 경험하는데, ⑩심의 열락입니다. 그러면 「意(1차 인식-신념처) → 識(2차 인식-심상의 과정) → 心의 행위」로 진행되는 순서로 ⑪心이 삼매를 닦음 즉 내적인 心의 사마타로 법을 드러나게 하고, ⑫현상의 영역에서 사실의 영역으로 진입 즉 현상의 영역에서의 지배자인 마라로부터 풀려남입니다.
이어서 ⑬-⑯은 법의 위빳사나이고, 이런 16단계로 사념처는 완성됩니다. ⇒ 여실지견 ⇒ 예류자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18. 입출식념 경[호흡수행 16단계 & 사념처-칠각지에 의한 깨달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1213)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8&wr_id=8
• 대상(컵의 비유) ‒ 「호흡(nimitta) = 올라가는 수행①(신행의 진정) → 수(受-cittassa nimitta) : 올라가는 수행② (심행의 진정) + 벗어나는 수행①(내적인 심의 사마타) → 드러나는 법 : 벗어나는 수행②(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
[7] 아침독송(250825) ‒ (SN 46.56-아바야 경)[지(知)와 견(見)의 원인-조건 → 수행의 중심 개념 ‒ 장애와 각지](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6
참조 : 그림 : 수행(修行)의 중심 개념 ‒ 예외가 없는 법의 과정
& 다섯 가지 장애와 칠각지의 자량과 자량 아닌 것 ‒ (SN 46.51-자량 경)
뿌라나 깟사빠는 알고 봄 또는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함에 원인-조건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원인-조건이 있다고 말하며, 다섯 가지 장애와 깨달음의 요소 일곱 가지(칠각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 장애와 칠각지는 그대로 「수행의 중심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 「수행의 중심 개념」 ‒ 心을 장애가 차지할 것인가? 장애를 밀어내고 각지가 충만할 것인가? → 사념처로 장애를 밀어내고 각지를 충만케 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사마타-위빳사나로 충만한 칠각지를 닦아서 명과 해탈/열반/구원의 실현으로 완성되는 수행 체계
; 알지 못함과 보지 못함의 원인-조건 ‒ 다섯 자기 장애(욕탐(慾貪)-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가 스며들고, 다섯 가지 장애에 시달리는 心으로 머물고, 다섯 가지 장애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
; 앎과 봄의 원인-조건 ‒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고, 쉼으로 귀결되는 칠각지를 닦은 心으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
한편, (SN 46.55-상가라와 경)/(AN 5.193-상가와라 경)은 기억과 관련하여 다섯 가지 장애를 개별적으로 비유합니다. ⇒ (521쪽) 참조
[8] 아침독송(250826) ‒ (AN 9.44-혜해탈자 경), (AN 9.45-양면해탈자 경)[구차제주(九次第住)에 의한 혜해탈자](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8_02nn&wr_id=1397
참조 : 그림 2. 수행지도 ‒ 단계적 치유 : 구차제주(九次第住)
1. 보편적 깨달음(*) = 혜해탈자(慧解脫者-paññāvimutta) ‒ 구차제주(九次第住-초선~상수멸의 아홉 단계 삼매의 순서적인 머묾)의 깨달음 ‒ 계(戒)-정(定)-혜(慧)의 완성 → 삼매 없는 마른 깨달음 아님
(*) (SN 8.7-자자(自恣) 경) ‒ 500명의 아라한 가운데 삼명(三明)을 갖춘 자 60명(12%), 육신통(六神通)을 갖춘 자 60명(12%),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60명(12%), 나머지 320명(64%) 혜해탈자(慧解脫者)
2. 단계지어진 과정과 단계지어지지 않은 과정
• 초선~비상비비상처 ‒ 단계지어진 혜해탈자
• 상수멸 ‒ 단계지어지지 않은 혜해탈자
3. 전생을 기억하는 능력(숙주명)이나 죽고 태어남을 직접 보는 능력(천안명) 등이 없이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직접 깨닫는(누진명) 혜해탈자는 가르침의 밖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깨달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외도들은 비난하지만, 부처님은 잘 설득하곤 합니다.
‒ 유행승들의 혜해탈자에 대한 비난에 대한 부처님의 논파 → 혜해탈자의 개념은 외도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교만의 특징임
; (MN 80-웨카나사경)/(SN 12.70-수시마 경) 참조(61쪽)
4. 혜해탈자는 이렇게 구차제주로 깨달은 아라한이고, 양면해탈자는 거기에 색계-무색계의 경지를 몸으로 실현하는 한 면을 더 포함하여 양면으로 해탈한 아라한입니다.
이렇게 보편적 깨달음인 혜해탈자도 구차제주의 삼매수행의 과정으로 깨달은 아라한이라는 점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처님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불교 안에서도 혜해탈자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는데, 삼매 없는 깨달음(순수 위빳사나/마른 위빳사나)입니다.
이때, 삼매 없는 깨달음이란 필수품을 갖춘 삼매인 정정(正定-바른 삼매)을 중심에 둔 팔정도(八正道)에서 바른 삼매 없이 필수품의 과정만으로 깨닫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불교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