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지 정보

본문
Ⅴ. 수행지도(修行地圖) ‒ 1) 설명
[1] 개요
1. 성스러운 바른 삼매
사성제에서 고멸로 이끄는 실천인 고멸도성제는 중도(中道) 즉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입니다. 고집성제인 애(愛)의 해소를 통해 고멸을 이끄는 방법(길과 실천)입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바른 견해)-정사유(正思惟-바른 사유)-정어(正語-바른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활)-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사띠)-정정(正定-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입니다(ariyo aṭṭhaṅgiko maggo).
그런데 중도는 사실 정정(正定-바른 삼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과 (SN 45.28-삼매 경)은 기반과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를 말하는데, 기반과 필수품으로 정견(正見-바른 견해) ~ 정념(正念-바른 사띠)의 일곱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래서 바른 삼매가 성스러운 것이어서 바르게 깨달음으로 이끄는데, 필수품 7가지가 함께하기 때문에 팔정도가 구성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무엇이 기반을 가지고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正定)인가? 정견(正見-바른 견해), 정사유(正思惟-바른 사유), 정어(正語-바른말), 정업(正業-바른 행위), 정명(正命-바른 생활), 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 정념(正念-바른 사띠)의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심일경성(心一境性) ‒ 비구들이여, 이것이 기반을 가졌다고도 필수품을 갖추었다고도 하는 성스러운 바른 삼매이다.(ayaṃ vuccati ariyo sammāsamādhi saupaniso saparikkhāro)
이때, 필수품의 과정은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에서 설명하는데, 바른 견해가 앞서고 바른 노력(사정근)과 바른 사띠(사념처)가 뒤따르는 가운데 십악업을 피하고 십선업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십선업은 오계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오계를 지니고 십선업을 실천하는 일상 위에서 바른 노력(사정근)과 바른 사띠(사념처)로 바른 삼매를 성취하여 닦아가는 것입니다.
• 수행 : 「오계(五戒) → 십선업(十善業) → 정정(正定)」
2. 팔정도(八正道)를 펼친 열 가지 법(십정도)
(SN 45.8-분석 경)에 의하면, 바른 삼매는 초선 ~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무는 것인데, 각각의 경지를 성취(올라가는 수행)한 뒤 그 경지에 머물면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일(벗어나는 수행)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열의 모음에 속한 경들을 중심으로 많은 경은 바른 삼매(정정-sammāsamādhi)에 이어 바른 앎(正知-sammāñāṇa)과 바른 해탈(正解脫-sammāvimutti)로 구성된 열 가지 법을 말하는데, (경의 용어는 아니지만, 편의상) 십정도(十正道)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팔정도를 넘어서서 깨달음의 길로서의 십정도가 있다고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팔정도의 실천이 고멸도성제이기 때문에 팔정도를 넘어선 이후의 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정도는 팔정도의 정정을 머묾의 관점에서 펼쳐서 머물면서 하는 일의 성취를 단계적으로 안내한 가르침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 팔정도의 정정(正定) : 「토대인 삼매(바른 삼매) → (머물면서 하는 일) 1단계 깨달음(바른 앎) → 깨달음의 완성(바른 해탈)」
; (MN 149-육처에 속한 큰 경) ‒ 「그와 같은 견해가 바른 견해이다. 그와 같은 사유가 바른 사유이다. 그와 같은 노력이 바른 노력이다. 그와 같은 사띠가 바른 사띠이다. 그와 같은 삼매가 바른 삼매이다. 그전에 이미 그의 몸의 업과 말의 업과 생활은 아주 청정하다. 이렇게 그에게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은 닦아져 완성된다.
이렇게 이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길을 닦는 그에게 사념처도 닦아져 완성되고, 사정근도 닦아져 완성되고, 사여의족도 닦아져 완성되고, 오근도 닦아져 완성되고, 오력도 닦아져 완성되고, 칠각지도 닦아져 완성된다.
그에게 이런 두 가지 연결된 법인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나타난다. 그는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안다. 그는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버린다. 그는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닦는다. 그는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을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한다.」
이때, 수행의 과정은 명확해집니다. ‒ 필수품의 과정으로 제어된 일상 위에서 ①삼매를 성취하고(올라가는 수행), 그 삼매의 토대 위에 머물면서(벗어나는수행) ②바른 앎을 성취하고, ③바른 해탈로 완성됩니다.
결국, 수행은 일상의 제어 위에서 삼매를 성취하는 과정과 삼매 위에서 진행되는 바른 앎의 성취 과정과 바른 해탈의 성취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행을 삼매수행(三昧修行-samādhibhāvanā-삼매를 닦음)이라고 합니다.
3. 일상의 제어 위에서 삼매를 성취하는 방법
1) 일상의 제어는 계를 지닌 삶입니다. 오계와 십선업으로 일상에서 악을 피하고 선을 적극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계는 법의 호수를 둘러싼 제방입니다(SN 7.9-순다리까 경)/(SN 7.21-상가라와 경). 법의 호수에서 목욕하여 안의 오염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 호수를 감싸는 제방인 계에 확고해야 합니다. 바라문교 등 외도들은 강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의 오염을 씻는다고 하지만 강물은 밖의 오염을 씻어줄 뿐 안의 오염을 씻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닙니다. 안의 오염은 오직 법의 호수에서 목욕할 때 씻어지고, 그 호수는 계에 의해 보호되고 유지됩니다. 계를 지니는 의미이고, 수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DN 22/MN 10-대념처경)은 사념처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길이라고 합니다. 강물에 목욕하여 밖의 오염을 씻는 목욕이 아니라 법의 호수에서 목욕하여 안의 오염을 씻음(MN 7-옷감 경 참조)으로써 청정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념처가 바로 법의 호수이고, 사념처를 닦는 것이 법의 호수에서 목욕하는 것입니다.
; (AN 4.22-우루웰라 경2)는 장로를 만드는 법을 「①계(戒)의 중시 → ②많이 배움 → ③사선(四禪) → ④아라한의 성취」의 네 단계로 제시하는데, 법의 호수를 둘러싼 제방으로의 께에 맞춰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계(戒)의 중시 ‒ 법의 호수를 위한 그릇 마련
②많이 배움 ‒ 법의 호수에 물을 받음
③사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음 ‒ 법의 호수에서 목욕함
④아라한의 성취 ‒ 목욕을 마치고 깨끗해짐
특히, ‘②많이 배움’이 목욕을 위해 그릇에 물을 받는 과정이라는 점은 주목해야 하는데, 물을 받지 않으면 목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릇의 필요성을 잊게 되어 질서롭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막행막식이라는 한국불교 한편의 전통도 생겨난다고 할 텐데, 부처님이 이끄는 바른길이 아닙니다.
경을 공부하는 일은 이렇게 물을 받는 작업이어서 수행의 목욕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의 필수 요소입니다.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물만 받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이 받아지는 만큼, 단계적으로, 발을 씻고 반신욕을 거쳐 온몸을 씻음으로써 직접 목욕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욕을 마치고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 (MN 6-원한다면 경)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계(戒)를 갖추고, 계목(戒目)을 갖추어 머물러야 한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받아들인 뒤 학습계목들 위에서 공부해야 한다.」라고 비구에게 계(戒)에 충실할 것을 지시합니다. 비구가 동료수행자들의 존중과 존경으로부터 심해탈-혜해탈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17가지의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으로 ①계(戒)에 충실하고, ②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에 매진하고, ③선(禪)을 멀리하지 말고, ④위빳사나를 닦으면서 더욱 빈집에 머무는 삶을 말하는데, 이것이 계에 충실하라는 지시의 이어짐입니다. ; 만약 비구가 '가사와 탁발음식과 거처와 병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얻기를.'이라고 원한다면 ~ ; 만약 비구가 ‘내가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을 사용하게 해준 그들에게 큰 결실과 큰 이익이 만들어지기를.’이라고 원한다면 ~ |
2) 삼매를 성취하는 방법 = 사념처(四念處-cattāro satipaṭṭhānā) ‒ 「사념처의 정형 구문」
「수행의 중심 개념 ‒ 예외가 없는 법의 과정」에서 보았듯이 삼매를 성취하는 방법은 사념처입니다.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vedanāsu vedan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citte citt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비구는 몸(身)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느낌(受)들에서 느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마음(心)에서 마음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현상(法)들에서 현상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 ①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②ātāpī sampajāno satimā ③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①몸(身)에서 몸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머묾 → 삼매
②알아차리고(satimā),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sampajāno), 그름은 버리고 옳음으로 돌아가고 옳음은 유지-향상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ātāpī)는 ‒ 수행의 기법 → 집중하지 못한 심(心)을 집중하게 하는 기법
③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 수행의 성과 → 사념처의 영역에 속한 삶에서 조건으로의 다섯 가지 장애(간탐으로 대표)와 결과로서의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고뇌로 대표-윤회하는 삶에서의 구체적 아픔)가 제거됨
; 이 문장에는 두 개의 동사가 있는데, viharati와 vineyya입니다. 그런데 vineyya는 vineti의 원망형이기도 하고, 절대체이기도 한데, 원망형으로 보면 동사로 해석되고, 절대체로 보면 동사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vineyya를 원망형으로 보았는데, 주어는 ātāpī sampajāno satimā입니다.
; vineyya ‒ vineti에서 ⅰ)‘제거하다’의 원망형 또는 절대체, 또는 ⅱ)‘이끌다/훈련하다’의 미래수동분사 → ⅰ)(원망형) 제거할 수 있다/제거할 것이다/제거한다, (절대체) 제거한 뒤에/제거하면서/제거했기 때문에, ⅱ)(미래수동분사) 이끌려야 한다/훈련되어야 한다
이런 이해 위에서 사념처의 정형 구문은 ①이어보는 일을 통한 삼매의 성취 및 머묾을 본질로 하고, 그 기법으로 ②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시하며, 그 성과로 ③다섯 가지 장애와 수비고우뇌가 제거됨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4. 바른 앎(正知-sammāñāṇa)의 과정
바른 삼매의 토대 위에 머물면서 첫 번째로 도달하는 바른 앎은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인 오온(五蘊) 즉 행(行)들을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알고 보는 경지인데, 현상의 영역을 넘어 사실의 영역에서 무상(無常)을 관찰하여 성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과정은 두 단계로 진행되는데, 사실의 영역에서 관찰하기 위한 대상(법)을 드러내는 과정과 드러난 법의 무상을 관찰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대상을 드러내는 과정을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ajjhattaṃ cetosamatha)라 하고, 드러난 법의 무상을 관찰하는 과정을 법의 위빳사나(dhammavipassanā)라고 합니다.
※ 법의 드러남 ‒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중생들에게 안의 오염원은 무명이나 덮개인 다섯 가지 장애 등에 의해 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안의 오염원을 씻는 법의 목욕은 덮고 있는 것들(기억과 사유 또는 장애 등)을 벗겨내고 안의 것을 꺼내 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몸을 씻기 위해서는 옷을 벗고 맨 몸을 꺼내놓아야 하듯이 법의 목욕을 위해서도 안의 것을 꺼내 놓아야 하는데, 이것이 법의 드러남의 의미입니다.
이런 여실지견의 성취는 사념처의 완성입니다. 안으로 눈뜨는 것으로의 사띠가 완성된 것인데, 완성된 사띠는 이어지는 삼매와 지혜의 완성을 위한 토대가 되므로 사띠토대(satiāyatana)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혜의 성숙으로는 실다운 지혜(abhiññā)입니다.
; (AN 3.102-흙을 씻는 사람 경) 등 ‒ yassa yassa ca abhiññā 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 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āyatane 실다운 지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것이든 실다운 지혜로 실현해야 하는 법들로 심(心)을 기울인다. 그는, 사띠토대가 있을 때, 어디에서든 실현 능력을 얻는다.
한편, 행들을 무상-고-무아라고 사실에 들어맞게 알고 보는 경지라는 것은 무명과 애 때문에 몸으로 가는(몸에 구속된) 중생의 영역에 속한 수행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애가 근원인 몸과 함께하는 영역이어서 애의 형성 과정인 딱까 밖에서 진행되어 딱까로 접근해 오면서 애의 작용성을 해소하고 견해를 갖추는 수행입니다.
5.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
그런데 법은 한목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보기 위해서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깊이만큼 내가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내면의 오염도 토대인 삼매의 경지에 따라 단계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때, 토대인 삼매를 초선-제2선-제3선-제4선-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상수멸의 아홉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경지에서 머물면서 그 경지의 법을 드러나게 하여 무상을 관찰하게 되는데, 구차제주(九次第住-아홉 단계의 차례로 머묾)입니다. 그리고 초선~비상비비상처는 단계지어진 영역이고, 상수멸은 단계지어지지 않은 영역이어서 깨달음은 상수멸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삼매수행은 더 깊은 자리의 법들이 드러나도록 아홉 단계의 삼매를 '올라가는 수행(*)'과 각각의 삼매 위에 머물면서 법을 드러나게 하여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벗어나는 수행'으로 구성됩니다.
; 그림 ‒ 아산(我山)과 무아산(無我山)으로 이해하는 세상[소유의 삶 → 존재의 삶 ⇒ 해탈된 삶] 참조(349쪽)
(*) (MN 118-입출식념경)은 들숨-날숨에 대한 사띠 16단계 중 올라가는 수행을 ④신행의 진정(욕탐의 제어 →제4선)과 ⑧심행의 진정(상의 증득 → 무소유처)의 두 단계로 설명합니다.
한편, 구차제주 각각에서 드러나는 법에 대해서는 사리뿟따 존자가 순서대로 진행한 법의 위빳사나를 소개하는 (MN 111-순서대로 경)에서 순서대로 분석됩니다.
; 초선~무소유처를 구성하는 법들 ‒ 공통된 법들(①삶의 골격을 이루거나 ②수행요소)과 개별적 법들로 구성
; 비상비비상처와 상수멸 ‒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남 → 사띠를 가진 그는 그 증득에서 일어난 뒤 과거에 소멸하고 변해버린 그 법들을 ‘이렇게 이 법들은 없었다가 생겨나고, 있었다가 사라진다.’라고 관찰함」
; 표 ‒ 구차제주 분석표[법의 위빳사나 ‒ (MN 111-순서대로 경)]
6. 바른 해탈(正解脫-sammāvimutti)
바른 앎(正知)의 과정이 애의 형성 과정인 딱까 밖에서 진행되어 와서 애의 작용성을 해소하고 견해를 갖추는 수행이라면, 수행은 딱까 안의 문제를 해소하여 애가 형성되지 않게 함으로써 완성되는데, 사마타와 위빳사나입니다.
딱까 안의 과정은 「2차 인식 : 식(識-분별 앎)-수(受)-상(想) → 무명(無明-존재 앎) → 탐(貪-가치 앎)-진(嗔) → 심(心-앎) → 망(望) → 소망」으로 전개되어 애(愛)를 형성하는데, 애는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이때, 소망과 탐의 문제를 해소하여 애로부터 벗어나면 심해탈(心解脫)하고, 이런 수행이 사마타인데, 삼매의 완성입니다. ‒ 소망의 해소 = 염오(nibbidā), 탐의 해소 = 이탐(離貪-virāga)
또한, 상(想)이 2차 인식에 공동주관으로 참여하는 작용성인 번뇌(漏-āsava)를 부수어 무명의 문제를 해소하면 혜해탈(慧解脫)이고, 이런 수행이 위빳사나인데, 지혜의 완성(완전한 지혜-pariññā)입니다. ‒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김 = 소멸(nirodha)
이렇게 혜해탈하면 심해탈이 흔들리지 않게 되어 삶이 완성되는데(수행의 끝),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입니다. 그리고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음의 존재는 없다.’라고 알고 보게 되는데, 해탈지견으로의 완성입니다. ‒ 「흔들리지 않는 해탈(부동의 심해탈) → 태어남의 끝(몸으로 가지 않음) → 다음의 존재 없음(존재의 소멸)」
◐ 번뇌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수행 ‒ (AN 4.41-삼매수행 경)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닦고 많이 행하면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오취온(五取蘊)에서 생겨남과 무너짐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이 자라나고, 이렇게 색이 줄어든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가 자라나고, 이렇게 수가 줄어든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이 자라나고, 이렇게 상이 줄어든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고, 이렇게 행들이 자라나고, 이렇게 행들이 줄어든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이 자라나고, 이렇게 식이 줄어든다.’라고. 이것이, 비구들이여, 닦고 많이 행하면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