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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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修行)은 보시와 계 위에서 삶을 더욱 향상하는 길과 실천입니다. 수행(修行)은 bhāvanā(바-와나-)의 번역입니다. increase; development by means of thought; meditation[증진. 개발. 명상] 등을 의미하는 용어인데, 명상을 통해 마음의 힘을 개발하고 증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1).
수행은 숙고(가늠)하는 일을 포함하는데, 숙고의 힘과 수행의 힘으로 짝을 이루어 나타납니다(2). 이때, 숙고의 힘은 ‘몸-말-마음의 나쁜 행위에는 지금여기와 다음 생에 악한 보(報)가 있게 된다.’라고 숙고하여 몸-말-마음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좋은 행위를 닦아서 자신의 청정함을 지키는 것이고, 수행의 힘은 유학의 힘-칠각지-사선(四禪)의 세 가지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업과 보의 숙고(가늠)를 통해 행위를 제어하여 청정한 삶을 사는 것이 구체적 테크닉에 의한 직접적 수행 이전에 선행해야 합니다.
◐ 불교 수행의 특징
1. 행복의 과정으로 행복을 실현하는 수행(3)
수행에 대한 인도의 선입관은 ‘참으로 행복에 의해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괴로움에 의해 행복은 얻어진다.’라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의 길을 발견하기 전에는 이런 선입관에 의해 행하기 어려운 과정으로의 고행을 하였지만, 깨달음의 길이 아닌 것을 확인한 뒤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의 길로서의 팔정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합니다(4).
그래서 불교 수행은 행복에 의해 행복을 얻는 수행입니다. 수행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개발된 느낌이 수행이 진행되는 만큼 커지면서 수행의 동력이 되는 수행입니다. −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수행」
한편, 부처님이 거쳐온 최고의 고행 수행은 삼매 위에서 진행됩니다. 그러나 사띠는 확립되어도 몸이 진정되지 못하거나 파괴되는 현상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5).
2. 올라가는 수행과 벗어나는 수행(6)
아(我)의 견해를 가진 수행자들의 수행은 올라가는 수행입니다. 삼매를 성취하여 색계-무색계의 높은 세상으로 올라가는 한 방향성입니다. 그러나 무아(無我)의 견해를 가진 불교 수행은 올라가는 수행 외에 아(我)에 의해 전도된 영역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수행의 양방향성을 가집니다. 불교 수행에서 올라가는 수행은 벗어나는 수행을 위한 토대일 뿐 깨달음의 직접 과정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출가 후 처음 삼매를 닦아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성취하고도 열반으로 이끌지 못함, 단지 그 경지에 태어남을 이끌뿐이라고 생각하여 떠납니다(7).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올라가는 수행의 비중을 낮춰 보아서는 안됩니다. 올라가지 않고는 벗어남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는 수행은 삼매의 성취로부터 초선-제2선-제3선-제4선-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상수멸의 아홉 단계의 삼매로 구성되고, 벗어나는 수행은 각각의 단계를 토대로 심(心)이 일어나서 ①내적인 심의 사마타로 법을 드러나게 한 뒤 법의 위빳사나로 무상을 관찰하여 여실지견(행들의 무상-고-무아)하고, ②사마타로 염오-이탐하여 심해탈하고 위빳사나로 소멸(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김)하여 혜해탈함으로써 해탈지견(락-무아인 열반의 실현)함으로써 완성됩니다(8).
이렇게 불교 수행의 본질은 벗어나는 수행인데, 아(我)의 전도(존재-有)를 해소하고 무아(無我)의 전도되지 않은 삶을 실현(존재의 소멸)하는 것입니다(9). 그래서 벗어나는 수행은 무아를 선언하는 불교에만 있는데, 이런 벗어남의 영역에 있는 수행자를 성자(예류자-일래자-불환자-아라한)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런 사쌍의 성자는 팔정도가 있는 여기에만 있다고 사자후를 토하라고 합니다(10).
3. 단계적으로 성취되는 수행
한편, 초선 ~ 상수멸의 아홉 단계는 단순히 삼매(구차제정)라고 나타나지 않고 삼매를 성취하여 머묾(구차제주-nava anupubbavihārā)로 나타납니다(⇒ 구차제주 보기). 삼매를 성취하면 그 삼매를 토대로 머물면서 오염원을 부수는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삼매를 아홉 단계로 올라가면서 그 단계 만큼의 오염원을 버리고 벗어나는데, 초선 ~ 상수멸만큼의 해탈 또는 열반의 실현입니다. 이때, 초선 ~ 비상비비상처만큼의 성취는 단계지어진 해탈-열반이고, 상수멸에서의 성취는 단계지어지지 않은 해탈-열반이어서 깨달음의 완성입니다.
이렇게 불교 수행은 단박 깨달음을 이끌지 않습니다(11). 초선부터 상수멸까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끄는데, 내면의 오염원들의 드러남이 미세함의 차이에 따라 차별되기 때문입니다.
◐ 수행의 체계 − 「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
수행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골격은 사념처와 사마타-위빳사나입니다. 사념처는 딱까의 바깥 영역에서 딱까로 접근하며 다섯 가지 장애를 심(心)에서 밀어내는 과정이고, 사마타-위빳사나는 딱까의 안에서 탐-진-치를 직접 부수는 과정입니다.
사념처가 선행하여 사띠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서 사마타-위빳사나로 완성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골격입니다. 그래서 사념처라는 이 길은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건너기 위한,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이라고 선언되는데, 완성의 과정인 사마타-위빳사나는 이 길의 연장 구간입니다.
사념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른 뒤에 사마타-위빳사나로 연장되는데, 「필수품을 갖춘 삼매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법의 드러남 → 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 수행의 중심 개념 ⇒ https://buddhavada.ivyro.net/bbs/board.php?bo_table=buddhavada32&wr_id=1
| 수행(bhāvanā)은 버리는 것(pahāna)입니다. 삶을 퇴보로 이끄는 부정적 요소들을 떨쳐내어(viveka) 여의는 것(paviveka)입니다. 떨침은 재물의 후계자가 아니라 법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공부의 중심이고, 부처님은 버려야 하는 법들 또는 심(心)의 오염원을 알려줍니다. 여읨은 세 가지로 제시되는데, 계의 경시와 삿된 견해에 이어 번뇌들의 버려짐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수행은 떨침의 과정이고 이탐의 과정이고 소멸의 과정이며 쉼으로 귀결되는 것인데, 떨침의 끝 부분으로 다시 말하면, 염오-이탐-소멸로써 완성됩니다. 떨침은 딱까의 안팎을 포괄하는데, 딱까의 안에서 떨치는 마지막 과정이 염오이고, 망(望-lobha)의 제어 즉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음으로써 소망(nandi)이 생겨나지 않음 즉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nandirāgasahagatā)인 애(愛-taṇhā)가 형성되지 않게 하는 과정입니다. 염오 이전의 떨침 즉 딱까의 경계까지 접근하는 수행은 사념처입니다. 사띠(念-sati-알아차림-마음챙김-안으로 눈뜸)의 완성이어서, 완성된 사띠(사띠토대-satiāyatana)를 갖춘 여실지견의 경지이고, 예류자입니다. 이어서 딱까 안으로 들어가 떨침의 끝인 염오로 망(lobha)-소망(nandi)을 제어하고 이탐으로 탐(rāga)을 제어하여 애의 형성을 차단하는 과정은 사마타 수행(사마타=염오-이탐)인데, 삼매의 완성이고, 심해탈(心解脫)을 이끕니다. 수행의 최후 과정인 소멸은 번뇌의 부서짐입니다.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과정인데, 위빳사나이고 지혜의 완성이며 혜해탈(慧解脫)을 이끕니다. 사마타에서 얻어지는 심해탈은 위빳사나에서 얻어지는 혜해탈이 받쳐줄 때 흔들리지 않는데, 부동(不動)의 심해탈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의 완성이어서 깨달음이고, 아라한의 성취입니다. |
◐ 『초기불교 경전 백선 독송집』의 제6장은 수행의 골격을 구성하는 경 19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초기불교 백일 법문을 통해 골격을 설명하였는데, 「필수경전100」의 '제6장 수행(修行) ― 지도(地圖)'입니다. ⇒ https://buddhavada.ivyro.net/bbs/board.php?bo_table=buddhavada02_1&wr_id=6
◐ 『불교입문(Ⅱ-사실)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하였다』의 제6부 딱까가 해석된 불교 제4장 수행지도(修行地圖)는 딱까의 해석 위에서 수행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이어지는 아홉 개의 메뉴에 그대로 옮겨 소개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