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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와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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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6-02-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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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면 어떻게 될까?(부처님이 가르쳐준 윤회 이야기)』 제1부 개론 제1장 윤회 &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 Ⅰ. 윤회는 무엇입니까?

 

(MN 22-뱀의 비유경246)에서 부처님은 윤회 없음 즉 단견/단멸론을 직접 부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이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상실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어서 사실과 다르게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라고 말하는데, 고(苦)와 고멸(苦滅)의 삼법인(三法印)이고, 고집(苦集) 과 고멸도(苦滅道)로 확장되면  사성제(四聖諦)가 됩니다. 


경은 고집(苦集) 즉 연기(緣起)/십이연기(十二緣起)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나’라는 존재 즉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435쪽)의 삶을 설명하는데,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廻)’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이때, 윤회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

 

 「부처님은 육계(六界-여섯 가지 요소-地水火風空識)의 가르침을 통해 몸에 종속되지 않은 마음[식(識)]을 말합니다(1). 이 식은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것’이지만(2), 번뇌(漏) 또는 무명(無明)과 애(愛) 때문에 몸을 의지하고 몸에 묶이면 중생이라고 불립니다(3). 그리고 이 의지 관계는 마음과 몸(식과 명색)이 서로 조건 되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4). 그래서 몸이 무너져 죽으면, 몸은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고, 식은 새로운 의지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다른) 몸으로 (옮겨) 가는데(5), 태어남이고, 윤회입니다.


이렇게 몸이 죽어도 따라 죽지 않는 마음이 부모에 의해 제공된 명색(名色)[몸]에 육계(식 with 지수화풍공)로서 찾아와 잉태합니다(6). 그런데 이 식(識)은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면서(7), 이 세상과 저세상에 걸쳐 끊어지지 않고 흐릅니다(8). 죽는 순간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 이 몸과 함께 삶의 과정을 누적하는 변화의 과정(연기된 식)(9)으로 한평생을 살다가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져 죽으면 다시 몸으로 가서 이런 과정을 반복하게 됩니다(10-1). 그러나 사는 동안 무명과 애가 해소되면 몸으로 가지 않는데(10-2), 태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지 않을 때 비로소 죽지 않음 즉 불사(不死)가 실현됩니다. 이렇게 「불생(不生) → 불사(不死)」가 실현될 때 비로소 윤회에서 벗어나는데, 이것이 깨달음이고, 열반의 실현입니다(11). 그러면 불이 꺼지듯 식(識)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12). 또한, 어떤 이유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13). 그렇다고 아라한의 사후가 단멸 즉 무(無)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14). 다만, 헤아려지지 않는 영역이어서 무기(無記)로 소개할 뿐입니다(15).」   

 

; 윤회 책 강의 250318) (제1부 제1장) Ⅰ.윤회는 무엇입니까?[심의식의 동질성 위에서의 차별성 & 부처님은 윤회 없음을 직접 부정함](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8


; 윤회책 강의 250422) (제1부 제1장) Ⅰ. 윤회는 무엇입니까②[불교 안의 단멸론자 & 불교의 깨달음은 인도의 틀을 벗어난 불교 고유의 것& 윤회 정리①](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13


; 윤회책 강의 250429) (제1부 제1장) Ⅰ. 윤회는 무엇입니까③[해탈된(무명과 애의 구속 이전) 식(識) & 윤회 정리②](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14


; 윤회책 강의 250506) (제1부 제1장) Ⅰ. 윤회는 무엇입니까④[윤회 정리③ 윤회 이후 & (DN 11-께왓따 경)의 게송(명색의 멈춤 ↔ 식의 소멸)](근본경전연구회)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15 

 

(1) 몸에 종속되지 않은 마음 ‒ (MN 140-요소의 분석 경)


• (DN 2.6-사문과경, 아지따 께사깜발리의 말) ‒ ‘사대(四大-地水火風), 이것이 사람입니다. 죽을 때 땅은 땅의 무리로 들어가고, 되돌아갑니다. 물은 물의 무리로 들어가고, 되돌아갑니다. 불은 불의 무리로 들어가고, 되돌아갑니다. 바람은 바람의 무리로 들어가고, 되돌아갑니다. 기능들은 공간으로 옮겨갑니다.’ → 유물론(有物論) ‒ 단견(斷見)/단멸론(斷滅論)


• (MN 140-요소의 분석 경) ‒ ‘비구여, 육계(六界-여섯 가지 요소), 이것이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 땅(地)의 요소, 물(水)의 요소, 불(火)의 요소, 바람(風)의 요소, 공간(空)의 요소, 식(識)의 요소. ‘비구여, 육계(六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했다.


; 몸에 종속되지 않은 식 → 단견/단멸론의 극복


(2)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


(DN 11-께왓따 경)과 (MN 49-범천의 초대 경)은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식(識)은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난다.」라고 하는데, 무명과 애의 구속 이전의 식(識)의 상태를 알려줍니다. 하지만,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이는 때로부터 식(識)은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중생 세상에 머물러서 한계가 생기고(AN 3.77-존재 경1→450쪽), 의도와 기대라는 속성이 생기면서(AN 3.78-존재 경2→451쪽), 빛을 잃고 몸으로 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한편, (SN 12.64-탐 있음 경→59쪽)은 식이 머물고 늘어나는 경우(→ 생-노사 → 슬픔-고뇌-절망과 함께하는 그가 있다)와 머물지 않고 늘어나지 않는 경우(→ 생-노사 없음 → 슬픔-고뇌-절망이 없는 그가 있다)를 말하는데, 후자의 경우의 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3) 몸을 의지하고 몸에 묶인 마음 ‒ (DN 2.24-사문과경, 위빳사나의 앎)


그가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知)와 견(見)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 ‘나의 이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식(識)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4)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 ‒ (DN 15.1-대인연경, 연기)


•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n’ti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있다.

•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n’ti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에 의해서 알려져야 한다.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오지 않는데도 명색이 모태에서 공고해지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이 모태에 들어온 뒤에 잘못되었는데도 명색이 금생을 위해 재현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아난다여, 식이 어린 남녀 아이에게서 끊어졌는데도 명색이 늘어나고 자라고 충만하게 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명색에게 오직 식이 원인이고, 식이 인연이고, 식이 자라남이고, 식이 조건이다.”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아난다여, ‘명색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아난다여, 식이 명색에 머묾을 얻지 못했는데도 미래에 생(生)과 노사(老死)라는 고(苦)의 자라남을 위한 근본을 선언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므로, 아난다여, 오직 명색이 식의 원인이고, 명색이 식의 인연이고, 명색이 식의 자라남이고, 명색이 식의 조건이다. 아난다여, 명색의 ‘식과 함께 서로 조건 됨’이 지속되는 그 범위에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옮겨가고, 다시 태어난다. 그 범위에서 이름이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언어가 적용되고, 그 범위에서 개념이 적용되고, 그 범위가 지혜의 영역이고, 그 범위에서 금생(今生)을 선언함으로써 윤회를 지속한다.”


※ (DN 14-대전기경)과 (SN 12.65-도시 경)은 연기에서 십지연기의 형태로 식과 명색의 서로 조건 됨을 갖춘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5) 몸은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되고, 마음은 다음 생으로 감 ‒ (SN 55.21-마하나마 경1)


두려워하지 말라, 마하나마여. 두려워하지 말라, 마하나마여. 그대의 죽음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쁘게 죽음을 맞지 않을 것이다. 마하나마여, 누구든지 오랜 세월 온전히 믿음을 닦은 심(心)과 온전히 계를 닦은 심과 온전히 배움을 닦은 심과 온전히 보시를 닦은 심과 온전히 지혜를 닦은 심을 가진 사람의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여기서 까마귀들이 쪼아 먹고, 독수리들이 쪼아 먹고, 매들이 쪼아 먹고, 개들이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 먹고, 많은 살아있는 벌레 떼가 파먹겠지만, 오랜 세월 온전히 믿음을 닦은 심과 온전히 계를 닦은 심과 온전히 배움을 닦은 심과 온전히 보시를 닦은 심과 온전히 지혜를 닦은 이 심은 위로 올라가고 특별한 곳으로 가게 된다.


※ (SN 22.95-거품 덩어리 경)은 ‘생명력과 체온과 식(識)이 떠날 때, 남(다른 생명)의 음식이고 의도가 없는 몸은 던져져 잠든다.’라고 하여 식이 떠나면 무너진 몸은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된다는 점을 직접 말해 줍니다.


(6-1) 잉태① ‒ (DN 15.1-대인연경, 연기(緣起))/(AN 3.62-근본 교리 등 경)/(MN 38-애(愛) 부서짐의 큰 경)


세 개의 경은 모태에 들어오는 것을 ①식(識), ②육계(六界), ③간답바의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1) 부모가 제공하는 명색(名色)에 전생에서 찾아오는 것은 식(識)입니다. 


2) 그런데 이 식은 중생으로 있는 한 한순간도 물질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서로 조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죽고 태어남의 과정에는 어떤 것으로 규정된 물질(四大造色)을 내려놓고 요소 상태(지수화풍-공)와 함께 명색으로 오기 때문에 육계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모태에 든다고 설명됩니다. 


3) 그리고 모태에 들어오는 그것 즉 식(識)을 이름 붙이면 간답바입니다. 


나(몸-마음).jpg


① (DN 15.1-대인연경, 연기)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 ⇒ (4) 몸과 마음의 서로 조건 됨


② (AN 3.62-근본 교리 등 경) 


비구들이여, 육계(六界)의 붙잡음을 원인으로 모태에 듦이 있다. 듦이 있을 때 명색(名色)이 있다.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촉(觸)이 있고, 촉(觸)을 조건으로 수(受)가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경험하고 있는 자에게 ‘이것은 고(苦)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고집(苦集)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고멸(苦滅)이다.’라고 선언하고, ‘이것은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선언한다.


③ (MN 38-애(愛)의 부서짐의 큰 경) 


비구들이여, 세 가지의 집합으로부터 태에 듦이 있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지만, 어머니가 월경하지 않고, 간답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태에 듦은 없다. 여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고, 어머니가 월경하지만, 간답바가 나타나지 않으면 태에 듦은 없다. 비구들이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있고, 어머니가 월경하고, 간답바가 나타날 때, 이렇게 세 가지의 집합으로부터 태에 듦이 있다.


(6-2) 잉태② ‒ (DN 28.4-믿음을 고양하는 경, 입태에 대한 가르침)


더 나아가,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입태(入胎)에 대한 법을 설하신 이것은 위없는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이런 네 가지 입태가 있습니다. 여기, 대덕이시여, 어떤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머물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머물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머물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오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 머물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입태입니다. 대덕이시여, 입태에 대한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7) 조건에 의해 생겨나는 식 ‒ (SN 12.45-냐띠까 경)/(MN 38-애(愛) 부서짐의 큰 경)


• (SN 12.45-냐띠까 경) ―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안(眼)과 색(色)들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긴다. … 안-이-비-설-신-의에 반복 …


• (MN 38-애(愛) 부서짐의 큰 경) ― yaṃ yadeva, bhikkhave, paccayaṃ paṭicca uppajjati viññāṇaṃ, tena teneva viññāṇaṃtveva saṅkhyaṃ gacchati.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ṃtveva saṅkhyaṃ gacchati 비구들이여, ‘식(識)은 조건을 연(緣)하여 생긴다.’라는 그것 때문에 식은 이름을 얻는다. 안(眼)과 색들을 연하여 식이 생긴다. 그러면 단지 안식(眼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 안-이-비-설-신-의에 반복 …


; 이 여섯 가지(六識)가 식(識)의 전부입니다. 다른 개념을 설정하여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식은 부처님에 의해 설명된 삶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8) 이 세상과 저세상에 걸쳐 끊어지지 않는 식의 흐름 ‒ (DN 28.6-믿음을 고양하는 경, 견(見)의 증득에 대한 가르침)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patiṭṭhitañca paraloke patiṭṭhitañca. ayaṃ tatiyā dassanasamāpatti.


또한, 이 세상에서도 머물고 저세상에서도 머무는, 양쪽에서 끊어짐이 없는 인간의 식(識)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 이것이 세 번째 견(見)의 증득입니다.


purisassa ca viññāṇasotaṃ pajānāti, ubhayato abbocchinnaṃ idha loke appatiṭṭhitañca paraloke appatiṭṭhitañca. ayaṃ catutthā dassanasamāpatti


또한, 이 세상에서도 머물지 않고 저세상에서도 머물지 않는, 양쪽에서 끊어짐이 없는 인간의 식(識)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 이것이 네 번째 견(見)의 증득입니다.


(9) 연기된 식의 윤회 ⇒ 「제3부 제4장 몸으로 가는 자 2.식의 정체성」 참조( 236쪽)


(10) ①몸으로 감 - ②몸으로 가지 않음 ‒ (SN 12.19-우현(愚賢) 경) ⇒ 「제3부 제3장 Ⅰ. 죽음(몸을 떠난 식(마음)은 어떻게 됩니까?)」에 반복(204쪽)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어리석은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어리석은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지 않고 애는 부서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간다. 몸으로 간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현명한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현명한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고 애는 부서진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현명한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는다. 그래서 현명한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지 않는다. 몸으로 가지 않은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범행의 실천, 어리석은 자에 비해 현명한 자에게 이것이 차이이고, 이것이 특별함이고, 이것이 다름이다.


(11) 「불생(不生) → 불사(不死)」의 깨달음 = 열반의 실현 ⇒ 「Ⅱ. 죽음과 죽지 않음」 참조(43쪽)


(12)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음 ‒ (MN 72-왓차 불 경)


“만약에 왓차여,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왓차여,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만약에 고따마 존자여, 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고따마 존자여, 이렇게 질문받은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 ‘제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습니다.’라고.” 


“만약에 왓차여,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 라고 알 수 있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만약 제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왓차여, 그것을 ‘그대의 앞에서 꺼진 그 불은 동쪽이나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의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꺼진 그 불은 연료가 다 소비되고 다른 것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량이 없어 꺼진 것이라는 이름을 얻을 뿐입니다.”


“이처럼, 왓차여, 묘사하는 자가 어떤 색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색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색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 색(色)-수(受)-상(想)-행(行)들-식(識)에 반복 …


(13) 열반은 완성이고, 의지처가 없음. 그래서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음 ‒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


“바라문이여,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다섯 가지 기능은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다섯입니까?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입니다. 바라문이여,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는,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지는 다섯 가지 기능들에게 의(意)가 의지처이고, 오직 의(意)가 그것들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의(意)에게는 무엇이 의지처입니까?”


“바라문이여, 의(意)에게는 사띠가 의지처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사띠에게는 무엇이 의지처입니까?”


“바라문이여, 사띠에게는 해탈이 의지처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해탈에게는 무엇이 의지처입니까?”


“바라문이여, 해탈에게는 열반이 의지처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열반에게는 무엇이 의지처입니까?”


“바라문이여, 질문을 넘어섰습니다. 질문의 끝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열반에 닿는 범행(梵行)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한편, (SN 44.9-대화하는 장소 경)은, 연료가 없으면 불이 꺼지듯이, 애(愛)라는 연료가 없는 아라한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63쪽)


(14) 아라한의 사후가 단멸 즉 無가 되는 것은 아님 – (SN 22.85-야마까 경)


‘나는 세존께서 설하신 법에 대해 ‘번뇌 다한 비구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단멸하고, 사라진다.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안다.’라는 악한 견해가 생긴 야마까 존자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paṭipucchāvinītā(질의응답으로 설명한 가르침)’을 설하여 견해를 바로잡아 줍니다. 


; 주제의 확장 ‒ 「paṭipucchāvinītā(질의응답으로 설명한 가르침)」 참조 ⇒ nikaya.kr에서 ‘질의응답으로 설명한 가르침’ 검색


그리고 문답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 「“도반 야마까여, 만약 그대에게 ‘도반 야마까여, 번뇌 다한 비구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하면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도반 야마까여, 무엇이라고 설명하겠는가?” “도반이여, 만약 저에게 ‘도반 야마까여, 번뇌 다한 비구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하면 이렇게 질문받은 저는 ‘도반이여, 색(色)은 무상(無常)합니다.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입니다. 고(苦)인 것은 소멸하고 줄어들었습니다. 수(受)는 … 상(想)은 … 행(行)들은 … 식(識)은 무상(無常)합니다.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입니다. 고(苦)인 것은 소멸하고 줄어들었습니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도반이여, 이렇게 질문받은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15) 아라한의 사후 – 헤아려지지 않음 → 무기(無記)의 주제 – (SN 44.1-케마 경) 등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갔다. 가서는 케마 비구니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합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이렇게 질문을 받았을 때, ‘대왕이여,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세존께서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님, 세존께서 이것들을 설명하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대왕이여,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그것을 되물을 것입니다. 좋으시다면,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이만큼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백배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천배의 모래가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큼의 십만 배의 모래가 있다.’라고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그러면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백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천배의 물이 있다거나, 이렇게 이만한 용량의 십만 배의 물이 있다.’라고 큰 바다에서 물을 헤아리는 것이 가능한 회계나 경리나 계산하는 자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스님.”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스님, 큰 바다는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대왕이여, 묘사되고 있는 여래를 색(色)에 의해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색(色)은 여래에게 버려졌고 뿌리 뽑혔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었고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대왕이여, 색(色)에 의한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결정되지 않고,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 수(受)-상(想)-행行)들-식(識)에 반복 …


;  색-수-상-행들-식 =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SN 22.94-꽃 경) → 세상에서 벗어나 실현되는 열반을 세상의 법으로 묘사할 수 없음 → 무기(無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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