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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주제는 ‘삶’입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앎)와 견(見-봄)의 선언이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외도 유행승들은 삶과 다른 것에 의해 삶과 다른 것에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삶의 문제의 답은 삶에 있습니다.
(*)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12) 책을 마치며① ‒ 여래(如來) 또는 불(佛)인 이유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435
삶은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삶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하고, 또한, 그런 내가 세상을 만나는 시스템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를 깨닫고 실현하였는데, 나의 삶에서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과정을 연기된 법들(무명 ~ 노사)의 조건 관계로 설명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연기와 연기된 법들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잘 보면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대해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거나 현재를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연기와 연기된 법들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유신(有身) → 오취온(五取蘊) → 활성존재(식-명색)」의 순서로 정리하여 아래에 서술하고,
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삶에 대한 진지함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관심의 중심에 있는 주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수행자는 나는 누구인지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제는 스승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 잘 둔 제자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아야 합니다. 잘 둔 스승 즉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정등각인 부처님의 제자들은 스승에게서 완전한 답을 찾으면 됩니다. 배워 안 뒤에 나의 삶에 수반되는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 가르침에 일치하게 실천하기만 하면, 스승의 가르침은 스승이 실현한 완전한 행복의 재현으로 나를 이끕니다.
1. 나는 누구인가? ‒ 1) 유신(有身-sakkāya)
무명(無明)과 애(愛)는 몸에 구속된 삶을 이끕니다. 그래서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한 채 몸이 무너지면 몸으로 가게 되는데,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입니다. 무명과 애는 번뇌의 산물입니다. 딱까의 시작점에서 상(想)이 전도된 상태로 2차 인식에 공동주관으로 참여하면 번뇌라고 부르는데, 무명루(常-樂-我의 전도)와 욕루-유루(淨의 전도) 입니다.
이렇게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삶, 탐-진-치가 함께한 유위의 삶, 무명과 애에 의해 다음 몸으로 옮겨가 윤회하는 삶은 몸에 구속된 삶입니다. 이런 존재 상태를 (식에게) 몸 있음의 상태라고 하는데, 유신(有身-sakkāya)입니다.
; 유신(有身) = 식(識)에게 몸(色)있음 ‒ 식온(識蘊)과 색온(色蘊)
이런 유신의 상태는 욕계의 존재로부터 색계 그리고 무색계의 꼭대기인 비상비비상처까지 즉 번뇌의 영역인 중생들의 세상 전부에 적용됩니다.
; '나는 누구인가?'의 주제는 이렇게 유신(有身)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에 대한 이해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 「유신(有身-sakkāya)의 보충 설명」 참조
2. 나는 누구인가? ‒ 2) 오취온(五取蘊)
식(마음)에게 몸 있음의 상태인 유신은 마음과 몸이 함께하여 인식하고 행위합니다. 그러면 인식과 행위 즉 삶의 과정에서 수(受-느낌/경험)와 상(想-경향)과 행(行-형성작용)들이 파생되어 쌓이는데, 수온(受蘊)-상온(想蘊)-행온(行’蘊)입니다. 그래서 식온(識蘊)과 색온(色蘊)으로의 유신은 색온-수온-상온-행온-식온의 오온으로 확장되는데, 오온(五蘊)입니다.
그런데 번뇌-탐-진-치-무명-애 등 오염원에 오염된 중생은 이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데, 취(取-집착)입니다. 이렇게 오온에 취가 더해진 집착이 상태를 오취온(五取蘊)이라고 하는데, 유신은 곧 오취온입니다.
그래서 유신인 나는 삶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수-상-행들이 더해져서 오취온이 됩니다.
3. 나는 누구인가? ‒ 3) 활성존재(bhūta) = 식(識)과 명색(名色)의 서로 조건됨에 의한 하나의 존재 상태
유신에서 확장된 오취온은 지난 삶의 과정이 쌓여있는 무더기에 불과한 색-수-상-행들-식의 무더기를 붙잡음으로써 구성되는 나에 대한 확장 개념입니다. 그런데 삶은 단지 지난 삶의 과정의 무더기인 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을 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경은 오취온인 나에게 두 가지 활성 요소를 적용함으로써 활성 상태의 나를 설명하는데, 촉(觸)과 작의(作意)입니다. 그래서 나는 색온-수온-상온-행온-식온에 촉과 작의가 더해진 활성 상태로 한번 더 확장되는데, 활성존재(bhūta)입니다. 이때, 유신을 구성하는 색과 식을 제외한 파생된 것과 활성 요소를 하나로 묶어 명(名-nāma)라고 부르는데, 편의상 파생된 것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활성존재는 식과 색과 명으로 구성됩니다.
그런데 명(名-nāma-파생된 것)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색이나 식에 묶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명은 색에 묶는 것이 적절할까요아니면 식에 묶는 것이 적절할까요?
명을 식에 묶으면 어떨까요? 그러면 색과 명식으로 구성되는 나를 말할 수 있는데, 몸과 몸 아닌 것들입니다. 몸을 중심으로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나를 그런 방법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명을 색에 묶어서 식과 명색으로 구성되는 나를 말합니다.
그러면 식과 명색으로 구성되는 나는 어떤 의미일까요? 식과 색 즉 마음과 몸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지금 나를 구성하는 몸은 남의 역사를 담고서 부모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나의 역사를 담고서 나의 전생에서 옵니다. 그렇게 만난 몸과 마음은 금생이라는 한 평생을 살다가 몸이 무너지면 몸은 버려지고 마음은 금생의 역사까지를 담고서 다시 내생의 부모님이 제공하는 남의 역사를 담은 몸과 만나 다음 생을 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무명과 애를 해소하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면 (식이) 몸으로 간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명을 식이 아니라 색에 묶어서 식과 명색이 서로 조건 됨에 의해 함께하는 활성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런 이해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의 삶에서 파생된 것들은 몸이 무너진 뒤에는 몸과 함께 버려지고 오직 마음(식)만이 나의 정체성을 담고 다음 몸, 다음 생으로 옮겨감으로써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취온인 나는 촉과 작의라는 두 가지 활성 요소에 의해 활성화된 활성존재(식-명색)로 한번 더 확장됩니다. 이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확정적 답변입니다.

한편, 이렇게 설명되는 나라는 존재에게 괴로움이 생겨나 자라나는 조건 관계를 설명하는 교리가 연기(緣起) 즉 십이연기(十二緣起)인데, 근본경전연구회는 딱까가 해석된 불교의 입장에서 연기를 해석하여 「삶의 메커니즘」으로 도식화하였습니다. ⇒ 「Ⅱ. 삶의 메커니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