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강의 총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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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法句經) 강의 총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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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24회 작성일 26-02-1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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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法句經) 강의 총괄 요약

 

 

법구경(法句經)26개 품 423개의 게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202291일부터 아침 독송 시간에 3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1. yamakavaggo (KN 2.1-쌍 품) 법구경의 첫 번째 품 스무 개의 게송을 여덟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마음이 삶의 중심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첫 번째 게송으로 시작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1

 

 

 

 

2. appamādavaggo (KN 2.2-불방일 품) 법구경(法句經)의 두 번째 품을 세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2

 

 

불방일(不放逸)은 불사(不死)로 가는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 걸음이고, 방일(放逸)은 죽음으로 가는 즉 윤회를 반복하는 걸음입니다. 불방일 품은 불방일에 대해 이렇게 구별해야 알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불방일로써 방일을 떨치고 지혜의 성에 오른 슬픔 없는 사람은 슬픈 사람을 살핀다고 하는데, 완성된 사람 또는 완성을 향해 앞선 사람이 뒤 쳐진 또는 출발도 하지 못한 사람을 살피고 이끌어야 하는 당위성입니다. 불교의 중생구제 방법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는데, 같은 의미로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살핍니다.

 

 

 

 

3. cittavaggo (KN 2.3-() ) 법구경(法句經)의 세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3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심()도 제 영역에서 벗어나 남의 영역 즉 마라의 영역에 던져졌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을 겪느라고 펄떡거립니다. 이 영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든 심과 보호된 심은 행복을 가져옵니다. 동굴(피난처)에 홀로 있는 심 즉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을 가진 사람은 몸을 넘어선 takka의 안에서 제어함(사마타-위빳사나)으로써 마라의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이외에 흘러나오지 않는 심과 맞지 않는 심, 몸을 옹기그릇처럼 알 것, ()이 떠나면[()을 가지지 않은 몸이 되면] 몸은 버려짐, 잘못 지향된 심()과 바르게 지향된 심()이 밖의 것들보다 나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가짐 등을 설명합니다.

 

 

 

 

4. pupphavaggo (KN 2.4-꽃 품) 법구경(法句經)의 네 번째 품을 일곱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4

 

 

잘 설해진 법의 구절을 가려내어 죽음의 세상을 이기는 자로서의 유학(有學), 텅 비고 헛되고 실체가 없는 오온(無我)과 마라의 꽃으로의 전도된 관점()에 입각한 법의 구절들, 꽃을 모으는 갈망을 의()에 품은 사람들 즉 아()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죽음이 데려가고 죽음이 영향력을 행사함, 벌이 꽃에서 빛깔과 향기를 해치지 않고 맛만 취한 뒤 떠나는 것처럼 또는 빛깔은 좋으나 향기가 없는 아름다운 꽃처럼 등의 비유,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평화로운 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름, 해탈한 사람 즉 아라한에게 마라는 길을 찾지 못함, 연꽃[처염상정(處染常淨)] 등의 설명을 포함합니다.

 

 

 

 

5. bālavaggo (KN 2.5-어리석은 자 품) 법구경(法句經)의 다섯 번째 품을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5

 

 

잠 못 드는 자에게 밤은 길다. 어리석은 자에게 우정은 없다. 부족한 줄 아는 자가 현명한 자. 숟가락이 카레의 맛을 모르는 것처럼, 혀가 카레의 맛을 아는 것처럼.’ 등 우리 사회에 회자 되는 표현들이 나타납니다. 이어서 업()의 익음 즉 다른 조건들과 엮여서 익은 뒤에 찾아와 경험되는 보()의 개념이 나타납니다. ‘법을 알지 못해 악업을 짓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후회하는 업이고 고()를 초래함. ()의 익음으로 연결됨 ()의 개념이 진행되는데, ()이 익지 않았을 때 악한 자도 즐거움을 누리는 현상도 설명됩니다. 그는 익는 과정을 지나서 충분히 익으면 그에 따르는 고()를 경험하게 됩니다.

 

 

 

 

6. paṇḍitavaggo (KN 2.6-현명한 자 품) 법구경(法句經)의 여섯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6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도 하지만, 불교 신자는 좋은 친구와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고, 그런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법을 마시는 자 즉 배워 알고 실천하는 자는 잠을 잘 잡니다. 제각각의 직업에 숙련돼야 하듯이, 현명한 사람은 자신을 길들입니다. 인간들 가운데 대부분은 죽음의 왕국의 이편에서 쫓아 달릴 뿐 저편 즉 열반으로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정등각에 의해 바르게 선언된 법을 배워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저편 즉 열반으로 갑니다. 검고 나쁘고 괴로움을 만드는 법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희고 좋고 즐거움을 만드는 법인 칠각지를 닦아야 하는데, 수행의 중심 개념입니다.

 

 

 

 

7. arahantavaggo (KN 2.7-아라한 품) 법구경(法句經)의 일곱 번째 품을 일곱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7

 

 

번뇌 다한 아라한은 열기가 없습니다. 여정을 마친 사람, 슬픔을 떠난 사람, 모든 곳에서 해방된 사람, 모든 속박을 부순 사람입니다. 머무는 곳에 매이지 않고 떠나는 그들의 갈 곳과 발자국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들도 이런 아라한을 부러워합니다. 진창을 제거한 호수처럼, 내면 깊은 곳에 쌓여있는 오염원들을 해소한 아라한에게 윤회 즉 반복되는 태어남은 없습니다. 이렇게 바른 무위(無爲)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은 의업(意業) 그리고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평화롭습니다. 믿음을 넘어서고 만들어짐의 극복을 아는 그가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라한이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즐거운 곳입니다.

 

 

 

 

8. sahassavaggo (KN 2.8-() ) 법구경(法句經)의 여덟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8

 

 

이익되지 않는 말 천 마디보다 이익되는 게송 한 구절, 법의 구절 하나가 더 낫습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최고의 승리자여서 백만의 전투에서 사람들을 이기는 것(관계의 성숙)보다 자기를 이기는 것(내적인 성숙)이 더 낫습니다. 제사는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바라고 하는 행위인데, 희생제 베풂 불교의 신행(信行)의 순서로 발전합니다. 이때, 불교의 신행은 최고의 예배인데,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백 년을 사는 보통의 삶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라나고 무너지는 법을 보아서 불사(不死)의 발자국을 보는 것 즉 최상의 법을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9. pāpavaggo (KN 2.9-() ) 법구경(法句經)의 아홉 번째 품을 세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09

 

 

이 품은 악업의 과()가 다른 조건들과 엮어서 익은 보()를 경험하는 업과 보의 법칙성을 중심으로 합니다. 악은 거듭하여 행하지 말고, 공덕은 거듭하여 행해야 합니다. 이런 명제에 관심을 가질 때 악을 피하고 선을 실천하게 됩니다. 또한, 업이 익을 때까지는 악한 자도 행운을, 선한 자도 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 순간의 삶은 한 방울의 물과 같고, 삶은 그 물방울로 채워지는 업을 담는 항아리입니다. 조금씩 악을 채우지 말고, 조금씩 공덕을 채워야 합니다. 바람을 거슬러 던져진 작은 먼지처럼 악은 과를 만들고 익혀서 보가 되어 되돌아옵니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있는데, 악업으로부터 자유로운 곳과 죽음이 정복할 수 없는 곳입니다.

 

 

 

 

10. daṇḍavaggo (KN 2.10-몽둥이 품) 법구경(法句經)의 열 번째 품을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10

 

 

내가 목숨을 사랑하듯이, 남들을 해치거나 해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업은 다른 조건들과 엮여서 익은 뒤에 보()로 경험되는데, 살아서 경험할 수도, 죽은 뒤에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깨진 징의 비유처럼 남의 행위에 반응하여 심()이 동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목동은 소를, 부처님은 중생을, 늙음-죽음의 왕 마라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목숨을 이끕니다. 사띠하지 못해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생-노사-수비고우뇌로 불탑니다. 범천-사문-비구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성숙 된 삶에 의해 부여됩니다. 히리와 옷땁빠는 인생항로의 방향타여서, 행실이 좋은 자 즉 히리와 옷땁빠로 제어하는 자는 다섯 가지 기능으로 자신을 길들입니다.

 

 

 

 

11. jarāvaggo (KN 2.11-늙음 품) 법구경(法句經)의 열한 번째 품[]을 네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11

 

 

지혜의 등불을 밝히지 않아 어두운 중생의 삶에서 누가 웃고 무엇을 기뻐하는가? 뼈로 골격을 만들고 살과 피로 덧씌운 몸, 늙음과 죽음의 골격 위에서 자기화와 위선으로 세상을 만나는 삶, 배우지 못한 사람은 황소처럼 늙어서 살만 늘어나고 지혜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늙음에 수반하여 지혜가 늘어난다. 한편, 부처님의 오도송이라고 알려진 두 게송은 집을 짓는 자에 비유한 애() 때문에 거듭 태어나 윤회하는 중생의 삶에서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늙어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범행을 실천하거나, 법다운 재물을 얻는 것입니다.

 

 

 

 

12. attavaggo (KN 2.12-() ) 법구경(法句經)의 열두 번째 품을 일곱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12

 

 

atta는 자아[()-본질/실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문맥에 따라서는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즉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야 합니다. 남을 이끌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한발 앞선 자리로 밀어 올려야 하는데 자신을 길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보호자는 오직 자신이며, 악은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자를 부숩니다. 끊임없이 계()를 어기는 사람은 적이 그에게 원하는 방법으로 자신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도덕에 무관하게 살아가는 일은 쉽지만 해로움을 초래하고, 도덕적인 행위는 제어와 단속과 길들임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롭습니다. 청정도 불결도 개별적이고,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위에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13. lokavaggo (KN 2.13-세상 품) 법구경의 열세 번째 품을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2_13

 

 

세상 품은 앞선 아() 품과 함께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을 설명합니다. 이때, 세상(loka)은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들의 삶의 영역인데, 고의 영역이고 죽음의 신 마라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을 늘어나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법을 실천하는 자는 잠을 잘 잡니다. 물거품-신기루처럼 세상을 보는 분별해 아는 자를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합니다. 방일에서 벗어난 사람, 지은 악업을 선으로 덮는 사람은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세상을 비춥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눈먼 존재들의 세상에서 벗어나지만, 행치 못할 악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삶도 세상에서 벗어나 해탈된 삶을 실현하는 성자들에게는 비교되지 못합니다.

 

 

 

 

14. buddhavaggo (KN 2.14-부처 품) 법구경의 열네 번째 품을 여덟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1

 

 

되돌릴 수 없는 승리자. 세상 누구도 이르지 못하는 승리자는 자기를 이긴 사람인데, 갈애를 형성하지 않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깨닫고 사띠하는 사람은 신들도 부러워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삶의 과정도, 정법을 듣는 것도, 부처님의 출현도 얻기 어렵습니다. 모든 악을 행하지 않음, 유익(有益)의 성취, 자신의 심()을 깨끗이 하는 것이 부처님들의 공통된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소유가 아니라 갈애의 부서짐을 좋아합니다. 의지처인 부처님과 가르침과 성자들에게로 간 사람 즉 불교 신자는 사성제를 배워 알고 실천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안온을 위한 최상의 의지처여서 그 의지처에서 모든 괴로움이 해소됩니다. 부처님에서 시작하는 부처님의 가문은 행복을 얻습니다. 망상을 넘어서고 슬픔과 비탄을 건넌 존경받을만하고 꺼졌고 두려움이 없는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예배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15. sukhavaggo (KN 2.15-행복 품) 법구경의 열다섯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2

 

 

부처님의 가문은 행복합니다. 부처님의 가문에 속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이 될 때 승리와 패배를 모두 떠나고, 편하게 잠듭니다. 탐은 간탐으로 타오르는 불이고, 진은 거친 심의 거친 사유로 죄악을 짓습니다. 무명 위에서 흔들리는 들뜸이 가라앉은 평화는 으뜸의 행복입니다. 중생의 삶은 몸에 제약된 삶입니다. 그래서 몸을 유지하는 자량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이 자량의 부족에 따르는 배고픔은 아픔의 근본이 됩니다. 두려움을 떠나면 그에 따르는 악을 짓지 않고 오직 법의 기쁨을 누립니다. 어리석은 자와 함께하지 않고 성스러운 자와 함께하는 삶은 좋은 친구와 함께하는 삶이어서 언제나 행복합니다.

 

 

 

 

16. piyavaggo (KN 2.16-사랑 품) 법구경의 열여섯 번째 품을 일곱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3

 

 

삶의 부정적 요소에는 수동적으로 묶이지 않아야 하고, 긍정적 요소에는 능동적으로 마음을 묶어야 합니다. 사랑은 슬픔과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데, 심지어 이런 사랑은 얻어지지 않을 때 나쁜 행위 즉 악()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라한 등 사쌍팔배의 성자들을 세상 사람들은 사랑합니다. 소유의 삶에 묶이지 않은 심()을 가진 자는 불환자인 높은 흐름에 든 자여서 소유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불환자고, 존재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아라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공덕을 우호적인 친척과 친구들에 비유하면서 공덕이 저세상에서 맞이한다고 설명합니다.

 

 

 

 

17. kodhavaggo (KN 2.17-화 품) 법구경의 열일곱 번째 품을 일곱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4

 

 

(kodha)는 스승께서 버려야 한다고 하신 심()의 오염원입니다. 화와 자기화를 버리고 족쇄를 극복하고 명색에 집착하지 않을 때 고가 닥치지 못합니다. 마차의 고삐를 잡은 어떤 사람은 마부(sārathi)라고 불리고, 어떤 사람은 단지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 불릴 뿐입니다. 신들의 곁으로 가기 위한 조건은 진실을 말할 것, 화를 내지 말 것, 형편 닿는 만큼 보시하는 것이고, 깨어있음의 실천은 밤낮으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오로지 비난받거나 오로지 칭찬받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을 칭찬한다면 이것은 세상에 적용되는 법과 달라서 오로지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18. malavaggo (KN 2.18-더러움 품) 법구경의 열여덟 번째 품[]을 여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5&wr_id=3

 

 

자신을 위한 섬을 만들어야 합니다. 죽고 태어남의 중간의 삶이 없으므로 중유는 없습니다. 히리 없는 삶은 살아가기 쉽지만, 히리 있는 삶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제어되지 않은 삶으로 괴로움을 만들지 않아야 하고,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은 삼매를 얻지 못합니다. 치는 촘촘한 그물이고, 탐은 불꽃이며, 진은 떨치기 어려운 지배입니다. 이런 안의 과정에서 형성된 애는 넓고 깊고 긴 강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은 걸러내어서 보고 자신의 것은 감추고 보지 않지만, 이런 사람에게 번뇌는 늘어나고, 번뇌의 부서짐[누진(漏盡)]에서 멉니다. 부처님은 희론 없는 분, 동요 없는 분이고, 이런 부처님의 밖에는 사문이 없습니다.

 

 

 

 

19. dhammaṭṭhavaggo (KN 2.19-진리 안에 서 있는 자 품) 법구경의 열아홉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6

 

 

삶을 완성한 아홉 사람 ― ①진리 안에 서 있는 자[이분적 영역에서 벗어난 그런 높은 앎을 가지고 법을 보호하는 자]-현명한 자[안온하고 원망 없고 두려움 없는 사람]-법을 아는 자[적게 배웠더라도 법을 몸으로 보는 사람]-장로[더러움을 토해버린 지혜로운 사람]-훌륭한 성품을 지닌 사람[결점을 토해버린 그 높은 앎을 가진 사람]-사문[악들의 그침]-비구[헤아리면서 세상에서 실천하는 사람]-성자(muni)[세상에서 양면을 아는 사람]-성자(ariya)[모든 생명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 어떤 실천도 번뇌의 부서짐을 얻지 못하면 범부의 영역에 속할 뿐, 출리(出離)의 행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20. maggavaggo (KN 2.20-길 품) 법구경의 스무 번째 품을 다섯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7

 

 

봄의 청정을 위해 팔정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스승인 여래는 가르치는 자이고, 제자는 노력하는 자입니다. 삼법인을 지혜로써 보아 고를 염오하는 것이 청정의 길입니다. 수행하지 않으면 유(-bhava-존재)의 길을 가고, 수행하면 존재에서 벗어남 즉 무유(無有-vibhava-비존재)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런 이해에 의하면, 무유애(vibhavataṇhā)는 단멸의 측면이 아니라 존재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성에 대한 갈망과 자기에 대한 사랑을 끊고 열반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준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불현듯 죽음이 붙잡아 갈 때는 누구도 보호자가 되어 그를 보호해 주지 못하니, 현명한 자는 열반 가는 길의 건설 즉 팔정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21. pakiṇṇakavaggo (KN 2.21-다양한 품) 법구경의 스물한 번째 품을 세 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8

 

 

작은 행복이 버려질 때 큰 행복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작은 행복을 버립니다. 폭력을 통해 행복을 얻고자 하면 원망을 초래하고, 그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사람에게 번뇌가 늘어나고,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행하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번뇌가 줄어듭니다. 언제나 잘 깨어있는 부처님의 제자들은 불--승을 향한 사띠와 몸에 속한 사띠가 있고 의()는 비폭력과 수행을 좋아합니다. ()와 함께 사는 자는 삶이 어렵습니다.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서 옮겨 가고 윤회하는 중생은 괴로움에 짓눌려 살아갑니다. 그러니 애와 함께하지 않고 혼자서 살면[애멸] 괴로움에 짓눌리지 않게 됩니다.

 

 

 

 

22. nirayavaggo (KN 2.22-지옥 품) 법구경의 스물두 번째 품을 4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09

 

 

출가자로서 성품을 단속하지 않으면 악업이 되어 지옥으로 이끕니다.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간통하는 것은 위험하고, 아무리 미화하여도 두려움이 함께하는 초라한 사랑입니다. 출가자의 삶은 훨씬 더 단속되어야 합니다.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듯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확실한 노력으로 힘써 행해야 합니다. 나쁜 행위는 과()와 보()의 법칙성에 따라 고()를 불러옵니다. 그러나 좋은 행위는 같은 법칙성에 의해 락()을 불러옵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결점의 측면에서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은 나쁜 곳으로 가고,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좋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르게 알아서 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23. nāgavaggo (KN 2.23-코끼리 품) 법구경의 스물세 번째 품을 4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10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 가장 뛰어납니다. 열반이라는 가보지 못한 방향으로는 오직 자신을 길들이는 사람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숲속에서 살던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잡아 와서 묶어 놓으면 어떤 코끼리는 음식을 거부하고 숲속 생활의 기억 위에서 굶어 죽고, 어떤 코끼리는 잘 길들어 왕의 코끼리가 됩니다. 출가자가 부처님 가르침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게으르면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가 거듭 윤회의 삶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심()을 사실에 들어맞게 제어하는 사람은 공부를 성취하여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불방일과 심()의 보호를 통해 접근하면 힘든 곳 즉 세간/악처에서 자신을 끌어내야 합니다. 좋은 친구를 얻으면 함께 가고, 얻지 못하면 혼자서 가야 합니다.

 

 

 

 

24. taṇhāvaggo (KN 2.24-() ) 법구경의 스물네 번째 품을 8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11

 

 

방일한 사람에게 애()가 늘어나서 윤회합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을 위해 애의 뿌리를 캐내라고 말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의 편안함에 기댄 삶이 윤회를 이끌고, 불편을 극복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존재를 중심으로 연기를 이해한 사람은 과거-미래-현재에서 풀려나야 하고, 이렇게 해탈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애와 집착이 없어 마지막 몸을 가진 자는 인간의 언어에 능숙해야 하는데, 언어는 아라한에게도 세상과 만나는 수단입니다. 위험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는 애를 생겨나게 하여 남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칩니다. 밭에는 잡초가 결점이듯이 사람에게는 탐---(원함)-애가 결점이어서 보시의 공덕을 훼방합니다.

 

 

 

 

25. bhikkhuvaggo (KN 2.25-비구 품) 법구경의 스물다섯 번째 품을 5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12

 

 

인식과 행위 양면을 단속하고 삼매를 닦으며 홀로 만족하는 자가 비구입니다. 자신이 얻은 것이 작다 해도 스스로 쌓아가는 것이 삶입니다. 그래서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쌓아가는 사람이 존재에서 벗어날 때 비구라고 불립니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 선()이 없고, 선을 하지 않는 자에게 지혜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과 혜()가 있는 자는 열반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온()들의 자라남과 무너짐의 통찰(위빳사나)을 통해 불사(不死)를 인식할 때 환희와 희열을 얻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보호자이므로 자신을 단속해야 합니다. 가르침에서 기뻐하는 비구가 열반을 실현할 수 있고, 가르침에 전념하는 비구가 이 세상을 밝힙니다.

 

 

 

 

26. brāhmaṇavaggo (KN 2.26-바라문 품) 법구경의 스물여섯 번째 품을 12번의 강의를 통해 설명하였습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10_03_13

 

 

바라문(brāhmaṇa-브라-흐마나)의 원래 의미는 불선법을 제거한 자이고, 제거하는 과정은 선(-jhāna)을 하는 것(jhāyati)입니다. 브라만교의 바라문 계급과의 차이도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라문은 번뇌 다한 아라한(때로는 그 과정의 수행자 =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을 지시하는데, 이 품은 그런 바라문에 대해 41개의 게송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8개월 만에 26423 게송으로 구성된 법구경(法句經-dhammapada)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근본경전연구회만의 특별한 접근에 의한 법구경 해설서가 출판될 것입니다. 오직 ‘4부 니까야를 꿰어 경으로 경을 직접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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