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겨냥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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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겨냥한 자(part Ⅰ 공덕) → 깨달음을 겨냥한 자(part Ⅱ 교학) → 깨달음 자(MN 22-뱀의 비유 경) |
(part Ⅱ) 교학 − 부처님 가르침의 상세 → 「깨달음을 겨냥한 자」 
부처님은 번뇌 다한 자 즉 ➀아라한(阿羅漢)입니다(1). 부처님은 아홉 가지의 덕성을 가진 여래(如來)라고 정의되는데(2), 아라한 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➁정등각(正等覺), 밝음과 실천을 갖춘 ➂명행족(明行足), 앞서 열반에 도달하여 진리의 길을 보여주는 ➃선서(善逝), 중생들의 삶의 영역인 세상을 사실 대로 아는 ➄세간해(世間解), 사람들을 향상으로 이끔에서 으뜸인 ➅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신과 인간의 스승인 ➆천인사(天人師), 깨달은 ➇부처(佛), 그래서 존귀한 ➈세존(世尊)입니다.
번뇌 다함(漏盡) 즉 번뇌가 완전히 부서진 깨달음이어서 ➁정등각도 아라한의 한 측면이고,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무명이 버려지고 명이 생겨나는 실천의 완성이어서 ➂명행족도 아라한의 한 측면입니다. 번뇌 다함에 의해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나 실현되는 열반에 앞서 도달함이어서 ➃선서도 아라한의 한 측면이고,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중생들의 삶의 영역을 정확히 알고서 번뇌 다함을 통해 그 세상에서 벗어났으므로 ➄세간해도 아라한의 한 측면입니다. 번뇌에 쌓인 중생들에게 번뇌 없는 삶의 자리로 바르게 이끌기 때문에 ➅무상조어장부도 아라한의 한 측면이고, 번뇌 다한 삶을 겨냥하도록 신과 인간을 이끄는 스승이기에 ➆천인사도 아라한의 한 측면입니다. 이렇게 깨달음은 오직 번뇌가 부서져 다함이기에 ➇부처도 아라한의 한 측면이고, 번뇌 다함에 의해 총괄되는 존귀함이기에 ➈세존도 아라한의 한 측면입니다.
한편, 부처님에 대한 호칭은 여래 또는 세존으로 나타나는데, 부처님이 자신을 말할 때는 여래, 제자들이 부처님을 말할 때는 세존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홉 가지 덕성은 아라한과 정등각으로 대표되는데, 많은 경우에 ‘여래-아라한-정등각’이나 ‘세존-아라한-정등각’ 또는 ‘아라한-정등각인 고따마 존자’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선서도 스승의 관점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특히, 깨달음의 길에 대해 선서의 율 외에 다른 곳에는 없다는 서술을 반복합니다.(3)
이렇게 깨달음은 번뇌의 부서짐 또는 번뇌 다함이고, 번뇌 다해 깨달은 아라한을 혜해탈자(慧解脫者)라고 합니다(4). 지혜로써 번뇌를 부수고 깨달아 해탈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혜해탈자 즉 번뇌의 부서짐에 더해 색계-무색계의 높은 세상을 몸으로 실현한 아라한은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5), 전생을 보는 능력과 하늘과 지옥을 보는(죽고 태어남을 보는) 능력을 더 갖추면 삼명 아라한(三明阿羅漢), 신통을 행하는 능력과 하늘의 소리도 듣는 능력과 다른 중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능력을 더 갖추면 육신통 아라한(六神通阿羅漢)이라고 하는데, 부처님 당시에도 보편적 깨달음의 길은 혜해탈자였습니다. 깨달음은 오직 번뇌의 부서짐이고, 다른 능력들은 부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6)/(7).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번뇌의 부서짐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번뇌를 부수고 부처된 부처님의 길이고, 부처님에게서 배워 알고 실천하여 재현하는 제자들의 길입니다. 오직 그 일을 위해 번뇌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을 알아야 하고, 그 조건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실천하여 번뇌 없는 삶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교(佛敎)입니다!
번뇌에서 직접 생겨나는 것은 무명입니다(8). 무명(無明)은 딱까(takka)(9)라는 내적 영역에서 전개되어 애(愛)를 형성하고, 무명과 애는 존재화를 이끌어 중생을 유지하는데(10), 괴로움(苦)이 생겨나고 자라나는 삶입니다(苦集)(11). −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여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12)」
그러면 번뇌를 생겨나게 하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번뇌는 무명과 서로 조건되는 것(13)이어서 번뇌를 조건으로 생겨난 무명의 전개 과정에서 순환적 구조(14)를 통해 다시 번뇌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삶은 순환 구조 위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순환 구조 위에서 번뇌와 무명은 생겨날 때 함께 생겨나고 부서질 때 함께 부서집니다.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은 번뇌를 부숨으로써 무명이 생겨나지 않게 하고, 무명을 부숨으로써 번뇌가 생겨나지 않게 하는 방법과 실천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이 부처님의 출가 이유인 유익(有益-kusala)이고, 유익한 법은 일곱 가지 보리분법입니다(15)/(16)/(17). 무명 이후의 과정을 제어해서 번뇌의 작용을 그치게 하고, 번뇌를 직접 부수는 과정을 통해 무명이 더 이상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번뇌와 무명은 함께 부서지는데, 「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 체계입니다(18).
이렇게 해서 번뇌와 무명이 함께 부서져 서로의 조건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깨달음인데, 혜해탈자입니다.
하지만, 번뇌를 부수는 과정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래의 아홉 가지 덕성이 모두 번뇌의 부서짐 위에 있는 것이고, 이런 깨달음을 믿는 것이 불교의 믿음입니다(19).
부처님의 깨달음은 재현됩니다. 그래서 (스승을) 완전히 재현한 제자는 (제자인) 아라한입니다. 재현에 조금 미치지 못한 제자는 불환자와 일래자입니다. 그리고 예류자와 예류의 과정에 든 성자(법을 따르는 자와 믿음을 따르는 자)는 깨달음을 겨냥한 자입니다. 이때, 성자(聖者)는 재현의 과정에 들어선 제자들을 지시하는데(20), 불교에만 있는 성취의 영역입니다(21).
한편, 성자에 들어서지 못했지만 부처님을 믿고 사랑하는(부처님에 의지해서 삶을 향상코자 하는) 제자들은 하늘을 겨냥한 자입니다(22).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은 번뇌와 무명을 근본에 둡니다. 그리고 삼법인-연기-오온-팔정도-사성제로 펼쳐지면서 불교를 구성합니다(23). 여기 「(part Ⅱ) 교학 ‒ 부처님 가르침의 상세」는 하늘을 겨냥한 자를 넘어 깨달음을 겨냥한 자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안내하는 자리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정확하게 안내하기 위해 근본경전연구회는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의 범주로 공부의 기준을 분명히 합니다(24). 이런 기준 위에서 삶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의 메커니즘(연기)(25)과 수행지도(팔정도)(26)로 도식화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