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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업장소멸
(1) (AN 6.63-꿰뚫음 경) − 비구들이여, 의도가 업(業)이라고 나는 말한다. 의도한 뒤에[의도하면서] 몸에 의해, 말에 의해, 의(意)에 의해 업(業)을 짓는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4_06&wr_id=7
(2) (MN 44-교리문답의 작은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4&wr_id=1
“그러면 스님, 즐거움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즐거움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괴로움의 경험입니다.”
“그러면 스님, 괴로움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괴로움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즐거움의 경험입니다.”
“그러면 스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의 경험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명입니다.”
“그러면 스님, 무명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무명에게 대응하는 것은 명입니다.”
“그러면 스님, 명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명에게 대응하는 것은 해탈입니다.”
“그러면 스님, 해탈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해탈에게 대응하는 것은 열반입니다.”
“그러면 스님, 열반에게 대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도반 위사카여, 질문을 넘어서 버렸습니다. 질문들의 끝을 잡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도반 위사카여, 열반에 닿는 범행은 열반을 구원으로 하고 열반을 완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반 위사카여, 그대가 원한다면 세존께 가서 이것의 의미를 여쭤보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는 받아들이십시오.”
(3) 「pubbe cāhaṃ bhikkhave,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ṃ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와 고멸을 꿰뚫어 알게 한다.」 − (MN 22-뱀의 비유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2&wr_id=6
「pubbe cāhaṃ, anurādha,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n 아누라다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와 고멸을 꿰뚫어 알게 한다.」 − (SN 22.86/SN 44.2-아누라다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10&wr_id=2
(4) 고에 대한 바른 앎을 통해서 고멸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 → 『불교입문(Ⅱ-사실)』 128쪽 ☞
Ⅳ. 진리(眞理-sacca) − 삼법인도 연기도 팔정도도 모두 고와 고멸을 중심으로 모아지는데, 사성제라는 하나의 진리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삼법인과 연기라는 두 가지 사실(원리)의 토대 위에 안정되고 확실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사실 위에서 팔정도로써 만들어가는 불교를 포괄하는 개념이 있는데, 진리(眞理-sacca)입니다.
부처님의 관심은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입니다. 고의 자각과 고의 소멸(락의 실현)인데, 사실로서의 삼법인이 제시하는 행들과 열반의 특성입니다.
그런데 고의 자각을 위해서는 고의 정체가 드러나야 합니다. 고의 정체가 드러날 때 자각과 적절한 대응을 통해 고를 소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고의 정체는 고의 현상(결과)이기도 하지만 ‘어떤 과정에 의해서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인지(조건)’이기도 합니다. 무아(無我)이고, 무상(無常)에 의해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조건 관계가 분명히 알려져야 거기에 대한 대응방법이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원인 또는 조건 관계가 필요한데, 원인은 애(愛-taṇhā)이고, 조건 관계는 연기입니다. 특히, 이렇게 조건 관계가 알려질 때 그 조건의 해소를 위한 방법이 찾아지는데, 팔정도이고, 팔정도의 실천 즉 중도를 통해서 조건이 해소되면 고는 소멸하게 됩니다.
고와 고멸은 이런 방법으로 고-고집(애)(→ 연기) 그리고 고멸-고멸도(중도=팔정도의 실천)로 확장되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유일하게 진리의 자격이 부여된 사성제(四聖諦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5)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7&wr_id=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삿된 행위인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 비구들이여, 이것이 삿된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두 가지 바른 행위를 나는 말한다. — 비구들이여,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인가? 살생(殺生)을 삼감, 투도(偸盜)를 삼감, 사음(邪淫)을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행위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심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잘못된 행위로부터의 떠남, 제어, 자제, 삼감 — 비구들이여, 이것이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행위라고 불린다.
(6) (SN 12.19-우현(愚賢)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19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어리석은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어리석은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지 않고 애는 부서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간다. 몸으로 간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덮이고 애에 묶인 현명한 자에게 이 몸이 일어난다. 그 현명한 자에게 무명은 버려지고 애는 부서진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현명한 자는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바르게 범행을 닦는다. 그래서 현명한 자는 몸이 무너진 뒤 몸으로 가지 않는다. 몸으로 가지 않은 그는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범행의 실천, 어리석은 자에 비해 현명한 자에게 이것이 차이이고, 이것이 특별함이고, 이것이 다름이다.
(7) 업을 잇는 자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35. 업 분석의 작은 경[업을 잇는 자 - 저열함과 뛰어남은 업의 차이(가중평균)](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320)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4_05&wr_id=8
(8)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38. 갈애 부서짐의 큰 경[식에 대한 두 가지 관점 & 연기된 식의 윤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006)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4_08&wr_id=11
;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 이것이 윤회에 대한 불교의 확정적인 입장입니다!
(9) 십악업(十惡業)과 십선업(十善業)
; (MN 41-살라의 주민들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1&wr_id=2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1. 살라의 주민들 경[십업의 정의 - 업-과-보-공덕-udraya](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103)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1&wr_id=3
(10) (AN 6.63-꿰뚫음 경) − 비구들이여, 무엇이 업들의 보(報)인가? 비구들이여,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의 세 겹의 업들의 보(報)를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업들의 보(報)라고 불린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4_06&wr_id=7
(11) (AN 10.217-의도에 속함 경1)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9_11&wr_id=1
비구들이여, 의도에 속한 업(業)들을 짓고 쌓을 때,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소멸한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여기[금생(今生)]이거나 걸어서 닿는 곳[내생(來生)]이거나 그 후에 오는 생(生)에서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의도에 속한 업(業)들을 짓고 쌓을 때,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괴로움이 끝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12) 업장(業障-업의 장애) = kammāvaraṇatā → (AN 6.86-장애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4_09&wr_id=8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은 정법을 배운다고 해도 확실함과 선법에 대한 바름에 들어갈 수 없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업(業)의 장애[업장(業障)]를 갖추고, 오염의 장애를 갖추고, 보(報)의 장애를 갖추고, 믿음이 없고, 관심이 없고, 어리석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은 정법을 배운다고 해도 확실함과 선법에 대한 바름에 들어갈 수 없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추고 정법을 배우는 사람은 확실함과 선법에 대한 바름에 들어갈 수 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업(業)의 장애[업장(業障)]를 갖추지 않고, 오염의 장애를 갖추지 않고, 보(報)의 장애를 갖추지 않고, 믿음이 있고, 관심이 있고, 지혜롭다.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갖추고 정법을 배우는 사람은 확실함과 선법에 대한 바름에 들어갈 수 있다.
(13) (SN 36.21-시와까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2&wr_id=1
; (범어사 일요법회 250727) 업을 잇는자 & 예수재[공덕의 삶 - 공수래공수거 → 가져가는 재산](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2&wr_id=161
; 일요정기법회(250608) 두려워하지 않는 죽어야 하는 존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7&wr_id=153
(14) 업장소멸(業障消滅)
; (AN 3.101-소금 종지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5_10&wr_id=1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이 업을 거듭 지은 만큼 거듭 그것을 경험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런 존재에게는 범행(梵行)의 삶이 없고, 바르게 괴로움을 끝내기 위한 기회가 알려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다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 사람이 경험되어야 하는 업을 거듭 지은 만큼 보(報)를 경험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런 존재에게는 범행(梵行)의 삶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을 끝내기 위한 기회가 알려진다.
; 주제의 확장(AN-27) - 「업장소멸(業障消滅)」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244
(15) 과(果)도 보(報)도 고(苦)인 업(業)들과 과(果)도 보(報)도 락(樂)인 업(業)들
; 불교입문(1-소유 210323) − 스승의 영역에 속하는 것 & 칠불통계와 업-과-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2&wr_id=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