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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과 업장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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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78회 작성일 25-09-1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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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두 개의 글로 작성하였습니다.

 

■ 글 1                                                                                                                                                        butt01.png & butt01.png 

 

업(業)은 불교 경전어인 빠알리어로 kamma(깜마)입니다. 하지만, 힌두교 경전어인 산스끄리뜨어 karma(까르마)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의도가 곧 업이다(1).’라는 말씀에 의하면, 업은 의도적인 행위인데, 몸의 행위(身業)-말의 행위(口業)-마음의 행위(意業)으로 구성됩니다. 


업을 지으면 즉 의도적인 행위를 하면 두 가지 측면으로 결과가 생겨나는데, ①고(苦-괴로움-불만족)와 락(樂-즐거움-행복-만족)의 느낌-경험 또는 ②상(想-경향)의 잠재와 식(識-마음)의 머묾입니다.


고(苦)와 락(樂)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어서 락은 그대로 고멸(苦滅-괴로움의 소멸)입니다(2). 그리고 고와 고멸은 불교의 최상위 개념입니다(3). 부처님은 모든 것을 고와 고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고에 대한 바른 앎을 통해서 고멸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입니다(4). → 「괴롭니? 행복하자! 아프니? 아프지 마!」


의도적 행위는 번뇌의 영향위에 있는 유위(有爲)의 것과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무위(無爲)의 것이 있는데, 무명(無明)과 애(愛)의 삶과 무명멸-애멸의 삶입니다(5). 유위의 업은 상의 잠재와 식의 머묾이라는 두 가지 결과를 만듭니다. 상이 잠재하고 식이 머무는 삶은 중생이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서 다시 태어남 즉 윤회하고, 잠재하지 않고 머물지 않는 삶은 해탈된 삶이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지 않음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데, 불사(不死)와 열반의 실현이며 깨달음입니다(6).


; 상의 잠재와 식의 머묾은 연기(십이연기)의 중심을 구성하는 심오한 주제입니다. (part Ⅱ)의 ‘불교의 구성(진리)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상(想)은 행위를 재현하려는 경향으로 잠재한 것이어서 행위에 대응하는 삶의 질을 이끌고, 식(識)은 행위의 질에 따라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머무는데, 존재성의 차별을 가져옵니다. 특히, 업(행위)에 의해 식(행위자)이 머무는 현상은 주목해야 하는데, 행위를 행위인 업이 이어가지 않고 행위자인 식이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식)으로 구성되는 중생을 ‘업을 잇는 자’라고 부르는데, 나의 존재에 대한 가장 불교적인 정의라고 해야 합니다(7). →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8)


그래서 업은 행위자인 식을 낮은 세상으로 이끄는 업과 높은 세상으로 이끄는 업으로 구분하는데, 악업(惡業)과 선업(善業)입니다. − 십악업(十惡業)과 십선업(十善業)(9)


그런데 업에서 생기는 고와 락은 두 단계로 이해해야 하는데, 과(果-phala-결과)와 보(報-vipāka)입니다. 과는 행위에 의해 직접 생겨나는 결과치이고, 보는 과가 다른 조건들과 함께 엮여서 익은 뒤 겪어지는 경험치입니다. 특히, 보 즉 경험의 시점도 중요한데, 살아서거나 죽는 뒤 바로 다음 생 또는 그 이후 미래의 어느 생에서입니다(10).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들의 과는 경험하지 않는 한 남아있다가 언젠가 다른 조건들이 엮이는 때에 익어서 경험됩니다(11).


이렇게 보의 시점의 측면에서 전생의 업들의 보라는 영향을 받게 되는데, 업장(業障-업의 장애)입니다(12). 그런데 지금 삶에서 업장의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비중이 큰데, 세상의 참여와 나의 대응으로의 지금 업입니다(13).  


그래서 업의 장애 즉 업장은 소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삶에서 락을 부르는 선업의 비중을 키움으로써 업장으로 참여하는 지난 업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 「업장소멸(業障消滅)(14)


◐ 과도 보도 괴로움이어서 지옥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는 십악업은 피해야 하고, 과도 보도 행복이어서 하늘로 이끄는 힘을 가지는 십선업은 적극 실천해야 합니다(15).

 

■ 글2 

 

업(業)이라고 합니다. 불교 경전어인 빠알리로는 kamma(깜마)이고, 힌두교 경전어인 산스끄리뜨로는 karma(까르마)입니다.


행위를 말하는 용어로는 업(kamma-깜마)과 행(saṅkhāra-상카라) 그리고 공덕(puñña-뿐냐) 등을 말할 수 있는데, 모두 행위 그리고 행위의 결과를 함께 지시합니다. 그래서 업은 행위이면서 행위의 결과이고, 행은 형성작용이면서 형성된 것 그리고 공덕은 공덕을 만드는 행위이면서 결과로 생겨난 것 즉 복(福)을 함께 지시합니다.


이렇게 업은 행위이면서 행위의 결과입니다. 그러면 업을 지으면 거기서 생기는 결과도 다시 업이라고 부르는 가운데 사람은 ‘업을 잇는 자(kammadāyāda)’입니다. 업 즉 행위를 하면 행위의 결과가 생기고, 사람은 그 결과를 이어가며 변화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업을 잇는 자’로의 사람을 말하는데,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행위를 이으며 변화하는 자신이 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서 부처님은 ‘업을 말하는 자(kammavādī)’ 그리고 ‘결실을 말하는 자(kiriyavādī)’라고 불립니다.


주목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업을 이으며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나의 업을 대신 짊어져 주지 못하고, 누구도 나의 업을 대신 해소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나 자신이 업을 으며 괴로워 하기도 하고 즐거워 하기도 합니다. 오직 나 자신이 나의 업을 쌓아가며 퇴보하기도 하고 향상하기도 합니다. 괴롭지 않고 행복하고자 하면 나 자신이 행복을 가져오는 업을 지어 쌓아서 행복한 삶의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켜야 하고, 퇴보하지 않고 향상하고자 하면 나 자신이 향상으로 이끄는 업을 지어 향상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행위 말고 어떤 다른 힘이 있어서 나에게 행복과 향상을 담보해 주지 못합니다.


(MN 135-업 분석의 작은 경⇒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4_05

(MN 136-업 분석의 큰 경)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4_06 



업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합니다.


1. 업의 주체에 의한 분류 ‒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 :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


; 업의 뿌리 = 망(望-lobha), 업의 씨앗 = 견해


2. 결실에 의한 분류


; 과(果-phala)도 보(報-vipāka)도 괴로움인 업 = 십불선업(十不善業)/십악업(十惡業)

; 과(果-phala)도 보(報-vipāka)도 즐거움인 업 = 십선업(十善業)


⇒ 「과(果)도 보(報)도 괴로움이어서 지옥으로 이끄는 십악업은 피하고, 과도 보도 행복이어서 하늘로 이끄는 십선업은 적극 실천해야 합니다.」


이 주제는 (MN 41-살라의 주민들 경)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1&wr_id=2


과도 보도 괴로움인 업과 과도 보도 즐거움인 업은 이외에도 두 가지가 더 나타나는데,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1. 살라의 주민들 경[십업의 정의 - 업-과-보-공덕-udraya](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103)에서 설명하였습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5_01&wr_id=3


3. 번뇌의 영향에 따른 분류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은 업을 삿된 업과 바른 업으로 구분하는데, 바른 다시 번뇌의 유무를 기준으로 다시 분류합니다.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17. 커다란 마흔의 경[기반과 필수품을 갖춘 성스러운 바른 삼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1206)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7&wr_id=17


①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으로 연결되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것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것 ― 성스러운 심(心)을 가진 자, 번뇌 없는 심(心)을 가진 자, 성스러운 길을 갖춘 자,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에게 적용되는 것


이때, ➁는 아라한의 업(業) 즉 무위(無爲)의 업(業)이고 해탈된 삶에 대한 설명의 근거가 됩니다.


4. 부처님이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業)


• 괴로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쁜 업(業)

•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업(業)

• 괴롭고 즐거운 보(報)를 경험하게 하는 나쁘고 좋은 업(業)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보(報)를 경험하게 하고, 업(業)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업(業)


; 주제의 확장 ― (53)「부처님이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여 선언한 네 가지 업(業)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91


한편, 네 가지 업의 용례 가운데 (MN 57-개의 습성 경)은 「활성 존재(bhūta)를 원인으로 활성 존재에게 태어남이 있다. 행위 하는 것에 의해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자에게 촉(觸)들이 닿는다. 이렇게도 나는 ‘중생들은 업을 이은 자들이다.’라고 말한다.」라는 내용이 부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업(業)을 이은 자(kammadāyādā)’라는 관점을 제시하는데, 불교적인 업장소멸(業障消滅)의 방법으로 연결됩니다. 


; 주제의 확장 ― (54)「업(業)을 이은 자(kammadāyādā)」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95 

 

 

◐ 업장소멸의 주제는 해피스님의 책  『나는 불교를 믿는다 - 불-법-승 바로 알기 -』 제2부에서 다섯 번째 글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 butt01.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