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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6-02-1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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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불교(佛敎)의 구성원


불교는 종교(宗敎)입니다. 종교는 교주(敎主)와 교리(敎理)와 교도(敎徒)로 구성되는데, 교주는 부처님이고, 교리는 법(法)과 율(律)이고, 교도는 신자(信者)의 무리입니다.


1. 교주인 부처님


부처님은 칭찬받습니다. ― 「참으로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있습니다. ―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라고.(MN 95-짱끼 경)


아홉 가지 덕성[여래구덕(如來九德)]을 갖춘 부처님은 세상과 존재를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한 뒤, 법을 설하고 범행을 드러냅니다. 부처님을 뵙는 것이 좋은 일인 까닭은 설해진 법과 드러난 범행을 통해 세상과 존재에 대한 선언을 뒤따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이것이 종교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처님을 중심으로 교리와 교도를 갖춘 불교가 종교인 것입니다. 


2. 교리인 법과 율


죽음을 앞둔 부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아난다여, 그런데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 '이전에는 스승이 있었다. 이제는 스승이 없다.'라고. 아난다여. 그러나 이렇게 보지 않아야 한다. 아난다여, 나로부터 그대들에게 설해지고 선언된 법(法)과 율(律)이 나의 죽음 이후에는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N 16-대반열반경)

 

또한, 같은 경은 다시 말합니다. ― 「여기 비구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것은 법(法)이고 이것은 율(律)이고 이것은 스승의 가르침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말을 인정하지도 않아야 하고 부정하지도 않아야 한다.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로 그 구절과 음절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經)에서 해석하고 율(律)에서 짚어보아야 한다. 만약 그의 말을 경에서 해석하고 율에서 짚어보았는데, 경에서 해석되지 않고 율에서 짚어지지 않는다면 여기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 '확실히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비구가 잘못 받아 지닌 것입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이것은 거부해야 한다. 만약 그의 말을 경에서 해석하고 율에서 짚어보았는데, 경에서 해석되고 율에서 짚어지면 여기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 '확실히 이것은 세존의 말씀입니다. 이 비구가 바르게 받아 지닌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부처님은 법과 율에 대한 기준을 주는데, 누가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경에서 해석되고 율에서 짚어지면 부처님 가르침이고, 그러지 못하면 부처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때, 죽음을 앞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기준이 되는 경과 율은 모두 부처님 살아서 설해지고 제정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은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의 범주(*)에서 이렇게 정의됩니다. ― 「세존(世尊)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은 … 개별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AN 6.25-계속해서 기억함의 토대 경) 등


(*)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 = 공부의 기준」 ― 빠알리 문헌은 경(經)-율(律)-론(論) 삼장(三藏)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주석서와 복주석서 그리고 청정도론(淸淨道論) 등이 삼장(三藏)을 위한 참고 교재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경(經)은 숫따(sutta)인데, 효율적 전승의 필요에서 몇 가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된 경들의 모음을 니까야(nikāya)라고 하는데,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의 다섯 가지 분류입니다.


• nikāya: a group; sect; a collection. (m.) especially the coll. of Buddhist Suttas ― 「니까야 = 경(經)들의 모음」


한국붇다와다불교-근본경전연구회는,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1차 결집(結集)된 경(經)과 율(律) 즉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의 범주를 공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가르침의 중심을 차지하는 4부 즉 디가-맛지마-상윳따-앙굿따라 니까야와 비구-비구니를 위해 부처님에 의해 제정된 계율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쿳다까 니까야의 숫따니빠따와 법구경(法句經)을 포함합니다.


• 율(律-vinaya) ― 마하 위방가[비구 227계(戒)의 분석], 비구니 위방가[비구니 311계(戒)의 분석]


• 경(經-sutta) ―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상윳따 니까야,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의 일부[숫따니빠따와 법구경]


이런 공부 기준의 목적은 하나인데, 기준 되는 교재 안에서 교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영역을 설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삶 그리고 고멸(苦滅)과 관련하여, 어떤 주제이든 부처님에 의한 확정적 결론을 맺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준 위에서의 공부는 「불교(佛敎)를 부처님에게로 되돌리는 불사(佛事)」입니다. 이 불사(佛事)가 온전하게 진행되는 만큼 불교는 사회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우리 즉 중생들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 공부의 기준 안에는 부처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설해진 경들도 일부 포함됩니다. 반열반 이후 1차 결집까지의 과정에 제자분들에 의해 설해진 경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들이 공부의 기준 안에서 유효한 것은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 「“대덕이시여, 이 말씀은 웃따라 존자 자신의 이해입니까, 아니면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신들의 왕이여, 비유를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비유에 의해 여기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의미를 압니다. 예를 들면, 신들의 왕이여, 마을이나 번화가의 멀지 않은 곳에 큰 곡물 무더기가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들통으로나 바구니로나 감는 천으로나 두 손을 모아서 곡물을 가져갈 것입니다. 신들의 왕이여, 어떤 사람이 그 많은 사람에게 가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 ‘그대들은 어디에서 이 곡물을 가져갑니까?’라고. 신들의 왕이여, 어떻게 말하는 것이 그 많은 사람이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우리는 이러저러한 곡물 무더기로부터 가져갑니다.’라는 것이 그 많은 사람이 바르게 말하는 자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들의 왕이여, 잘 말해진 모든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의 말씀입니다. 그것으로부터 거듭 취하여 우리도, 다른 사람들도 말합니다.”(AN 8.8-웃따라 실패 경)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 말해진 것의 여부입니다. 말하자면, 같은 곡물 무더기에서 가져온 것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經)에서 해석하고 율(律)에서 짚어보아 확인된 것! 이것이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의 의미입니다.


공부 기준에 속한 경(經)의 구성을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경(經-sutta)의 구성001.jpg

3. 교도인 신자의 무리


부처님을 따르는 교도 즉 불교신자는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출가자(pabbajita)와 재가자(gihī)이고, 둘째는 범행을 실천하는 자(brahmacārī)와 소유하고자 하는 자(kāmabhogī)입니다. 출가 제자는 노란 옷을 입고, 재가 제자는 흰옷을 입습니다. 그래서 출가하는 소회는 이렇습니다. ― 「재가의 삶이란 압박이고 오염이 많지만, 출가는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온전히 충만하고 온전히 청정하고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범행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kāsāyāni vatthāni)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해야겠다.」


1) 신자의 분류-구성과 성취 한도


(DN 16-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은 「나는 나의 비구(bhikkhu)-비구니(bhikkhunī)-남신자(upāsaka)-여신자(upāsikā) 제자들이 ①성취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많이 배우고, 법을 받아 지니고,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실천하고, 여법하게 실천하고, 법에 따라 행하게 될 때까지, ②자기 스승에게서 온 것을 배운 뒤에 말하고 전도하고 알게 하고 확립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분명하게 될 때까지, ③생겨난 외도의 가르침을 법에 의해 비판하고, 비판한 뒤에 비범함[해탈된 삶으로 이끎]이 함께한 법을 전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완전한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출가자와 재가자를 남녀로 구분한 분류를 보여줍니다.


(MN 68-날라까빠나 경)은 「아누룻다여, 여래가 죽어서 가버린 제자의 태어남에 대해서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고, 누구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탁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얻음과 존경과 명성과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나를 이렇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누룻다여, 믿음이 있고, 큰 외경심이 있고, 큰 환희가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있다. 그들은 그 말을 들은 뒤에 그것을 위하여 심(心)을 집중한다. 그들에게, 아누룻다여, 그것은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으로 이끈다.」라고 죽은 제자의 죽음 이후를 설명하는 이유를 말하는데, 비구와 비구니에게는 아라한-불환자-일래자-예류자의 경우를 말하고, 남신자와 여신자에게는 불환자-일래자-예류자의 경우를 말합니다. (DN 16-대반열반경)처럼 출가자와 재가자를 남녀로 구분한 분류인데, 출가자의 성취 한도는 아라한으로, 재가자의 성취 한도는 불환자로 제시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 아누룻다여, 어떤 비구가 ‘이런 이름의 비구가 죽었다. 세존은 그에 대해 ‘무위(無爲)의 앎에 확고하다.’라고 말했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존자에 대해 ‘그 존자는 이런 계를 가졌다고도, 그 존자는 이런 법을 가졌다고도, 그 존자는 이런 지혜를 가졌다고도, 그 존자는 이런 머묾을 가졌다고도, 그 존자는 이런 해탈을 가졌다고도.’ 직접 보거나,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믿음과 계와 배움과 보시와 지혜를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는 그것을 위해서 심(心)을 집중한다. 이렇게도, 아누룻다여, 비구는 편히 머문다.」


(MN 73-왓차 긴 경)은 「①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비구-비구니 제자, ②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자인, ‘오하분결(五下分結)이 완전히 부서졌기 때문에 화생(化生)하여, 거기서 완전히 열반하는 자이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인 남신자-여신자, ③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소유하고자 하는 자이고, 가르침을 행하고, 가르침에 보답하는 자인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머무는’ 남신자-여신자는 단지 백 명이 아니고, 이백 명이 아니고, 삼백 명이 아니고, 사백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아니고, 더 많다.」라고 하는데, 출가자인 남-여, 재가자 가운데 범행을 실천하는 남-여, 소유하고자 하는 남-여로의 구분을 보여줍니다. 또한, 출가자의 성취 한도를 아라한으로,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자의 성취 한도를 불환자로 제시하는데, (MN 68-날라까빠나 경)과 같습니다. 또한,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가르침을 행하고, 가르침에 보답하는 자여서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머무는 것’을 신행(信行)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DN 29-정신 경)은 「쭌다여, 이런 요소들을 갖춘 범행(梵行)이 있고, 인생을 알고 출가(出家)한 지 오래되었고 수명의 절반을 지나 노년에 이른 장로인 스승이 있고, 성취되고 훈련되고 자신감을 가지고 유가안온(瑜伽安穩)을 얻었고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가르침이 생겼을 때 바른 법으로 잘 억제한 뒤에 비범(非凡)한 법을 설할 수 있는 제자인 장로 비구가 있고, … 제자인 중간 비구가 있고,… 제자인 신진 비구가 있고, … 제자인 장로 비구니가 있고, … 제자인 중간 비구니가 있고, … 제자인 신진 비구니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자인 남신자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자로서 소유하고자 하는 자인 남신자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자인 여신자가 있고, … 흰옷을 입은 재가자로서 소유하고자 하는 자인 여신자가 있고, … 범행이 번성하고 풍부하고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고 널리 퍼져서 신과 인간들에게 잘 알려지고, … 최상의 얻음과 최상의 명성을 성취하면, 그 범행은 그것 때문에 완성된다.」라고 하는데, 장로인 스승은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제자를 상세히 분류하는데, 제자인 장로-중간-신진 비구, 제자인 장로-중간-신진 비구니, 흰옷을 입은 범행을 실천하는-소유하고자 하는 남신자, 흰옷을 입은 범행을 실천하는-소유하고자 하는 여신자인데, (MN 73-왓차 긴 경)처럼 재가자를 범행을 실천하는 자와 소유하고자 하는 자로 구분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범행(梵行)은 범행이 있고, 장로인 스승이 있고, 제자인 비구-비구니, 제자인 범행을 실천하는 남신자-여신자, 제자인 소유하고자 하는 남신자-여신자가 모두 있어서 잘 알려지고 성취될 때 완성됩니다. 


2) 성자들[승(僧)-saṅgha]


한편, (SN 55.37-마하나마 경)에서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부처님에게 “대덕이시여, 어떻게 남신자(男信者)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마하나마여, 의지처인 부처님[불(佛)]에게로 가고, 의지처인 가르침[법(法)]에게로 가고, 의지처인 성자들[승(僧)]에게로 갈 때 ― 마하나마여, 이렇게 남신자(男信者)가 된다.”라고 대답하는데, 삶의 중심을 부처님[불(佛)-buddha]과 가르침[법(法)-dhamma]과 성자들[승(僧)-saṅgha]이라는 세 가지 의지처[삼보(三寶)]에 두는 사람이 남신자 즉 재가 제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성자들[승(僧)-saṅgha]은 「진지하게 수행하는 세존(世尊)의 제자들인 상가(僧伽) … 이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입니다.」라고 정의되는데,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인 출가 제자로 구성됩니다.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은 사쌍(四雙)과 팔배(八輩)로 한역(漢譯)되었습니다. 존재의 영역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영역으로 들어섰거나 완성한 성자들인데, 예류자(預流者)-일래자(一來者)-불환자(不還者)-아라한(阿羅漢)의 사쌍(四雙)과 예류도(預流道)-예류과(預流果)-일래도(一來道)-일래과(一來果)-불환도(不還道)-불환과(不還果)-아라한도(阿羅漢道)-아라한과(阿羅漢果)의 팔배(八輩)입니다.


※ 흰옷을 입은 재가 제자로서 범행을 실천하는 자의 성취 한도가 불환자이기 때문에 재가자인 성자도 있지만, 승(僧)이 아니기 때문에 의지처인 성자들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번역의 어려움 때문에 이런 문제를 내포한 채 성자들[승(僧) 또는 상가(僧伽)]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3) 재가신자의 전형


(SN 55.37-마하나마 경)은 다시 「①어떻게 계(戒)를 갖춘 남신자가 됩니까? ②어떻게 믿음을 갖춘 남신자가 됩니까? ③어떻게 보시(布施)를 갖춘 남신자가 됩니까? ④어떻게 지혜를 갖춘 남신자가 됩니까?」라고 묻는데, 재가신자가 갖추어야 하는 네 가지 덕목입니다. 그렇다면 재가신자의 전형은 삶의 중심을 부처님과 가르침과 성자들의 세 가지 의지처에 두고서 오계(五戒)와 믿음과 보시(布施)와 지혜를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AN 5.179-재가자 경)[☞ 제3부 제3장 Ⅱ. 오계(五戒)를 포함하는 교리의 확장 [2] 1.]은 ‘다섯 가지 학습계율[오계(五戒)] 위에서 행위를 단속하면서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을 위한 네 가지 높은 심(心)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는 자인 어떤 흰옷을 입은 재가자’를 설명하는데, 예류자(預流者)입니다. 사쌍의 성자의 첫 번째 성취여서 깨달음의 영역에 들어선 수행자인 예류자는 ①믿음을 따르는 자(saddhānusārī)와 ②법을 따르는 자(dhammānusārī)의 두 가지 길에 의해 성취됩니다.(SN 25-들어감 상윳따)


이때, (SN 55.53-담마딘나 경)[☞ 제2부 Ⅻ. 제사(祭祀) [용례 1] 1.]은 여래에 의해 말해지고,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녔고, 세상을 넘어서고, 공(空)에 일관된 가르침들을 적절한 때에 성취하여 머물기가 쉽지 않은 재가자에게 오계(五戒) 위에 서 있는 자의 다음 단계의 법으로 예류자(預流者)를 구성하는 요소인 부처님-가르침-성자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삼매로 이끄는 계(戒)를 갖출 것을 지시합니다. 


그렇다면, 여래에 의해 말해지고,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지녔고, 세상을 넘어서고, 공(空)에 일관된 가르침들을 적절한 때에 성취하여 머무는 재가자는 범행을 실천하는 재가자(gihī brahmacārī)여서, 법을 따르는 자의 길을 따라 예류자가 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범행을 실천하는 재가자를 제외한 흰옷을 입은 재가자는 소유하고자 하는 재가자(gihī kāmabhogī)인데, 믿음을 따르는 자의 길을 따라 예류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믿음을 따르는 자와 법을 따르는 자의 이해는 다른 측면에서도 가능한데, 네 가지 높은 심(心)의 용례입니다.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을 위한 네 가지 높은 심(心)[catunnaṃ ābhicetasikānaṃ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naṃ]’이란 표현은 두 가지 경우에서 발견되는데, 하나는 (AN 5.179-재가자 경)의 네 가지 예류(預流)의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경들이 말하는 네 가지 선(禪)[사선(四禪) :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제사선(第四禪)]입니다. 


그럴 때, 믿음을 따르는 자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로서 네 가지 예류(預流)의 요소의 높은 심(心)에 의해 예류자를 성취하는 사람이고, 법을 따르는 자는 범행을 실천하는 자로서 네 가지 선(禪)의 높은 심(心)에 의해 예류자를 성취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출가자는 일반적으로 법을 따르는 자로서 아라한까지 이르고, 재가자로서 법을 따르는 자는 불환자까지 이른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이해에 의하면, 대부분의 불교신자인 흰옷을 입은 재가자로서 소유하고자 하는 자(gihī odātavasano kāmabhogī)는

① 삼보(三寶)에 귀의한 재가자

② 믿음-오계(五戒)-보시(布施)-지혜를 갖춘 사람

③ 신행(信行)의 기준 ㅡ 「가르침을 행하고, 가르침에 보답하는 자여서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머묾」 → 믿음을 따르는 자의 길을 따라 예류자에 이름

이라고 정의됩니다.

재가신자의 이런 전형 위에서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라고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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