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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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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출가에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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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1-1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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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 고따마 부처님의 삶 ‒ Ⅵ. 출가에서 깨달음 그리고 깨달음의 재현까지 : 불교의 정체성


◐ 거기에 불교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혹자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 ‘인도에 있던 고행의 끝, 인도에 있던 삼매의 끝에서 깨달았는데, 거기에 불교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①고행은 깨달음을 위한 길이 아니어서 벗어나고, 


②삼매는 높은 하늘에 태어남을 이끌 뿐, 염오-이탐-소멸-가라앉음-실다운 지혜-깨달음-열반으로 이끌지 못하는 제한을 넘어 열반(존재의 삶에서의 벗어남)으로 이끄는 전혀 새로운 삼매 수행[정정(正定)]을 깨닫고 그 방법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깨달음은 이렇게 인도의 틀을 벗어난 불교 고유의 것입니다.


 

◐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네 개의 경

 

이 주제와 관련하여 답을 주는 경들이 있는데, 「불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네 개의 경(깨달음의 과정과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이라는 책으로 제작하였습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5&wr_id=59에 첨부


;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과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을 설명하는 경으로는 (MN 26-덫 경)/(MN 36-삿짜까 큰 경)/(MN 85-보디 왕자 경)/(MN 100-상가라와 경)의 네 개가 있습니다. 특히, (MN 85-보디 왕자 경)은 전체 과정에 대한 완전한 형태를 설명하고, 다른 경들은 각각의 주제에 따라 이 범위 안에서 설명합니다. 


; 중심이 되는 (MN 85-보디 왕자 경)은 이 주제를 포괄적으로 설명합니다.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5


; 책의 개요 부분만 아래에 실었습니다. 첨부된 책에서 네 개의 경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과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을 설명하는 경으로는 (MN 26-덫 경)/(MN 36-삿짜까 큰 경)/(MN 85-보디 왕자 경)/(MN 100-상가라와 경)의 네 개가 있습니다. 특히, (MN 85-보디 왕자 경)은 전체 과정에 대한 완전한 형태를 설명하고, 다른 경들은 각각의 주제에 따라 이 범위 안에서 설명합니다. 


Ⅰ. 4개의 경의 구조 분석


1. 주제


 

   주제
MN 85-보디 왕자 경  • ‘참으로 행복에 의해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괴로움에 의해 행복은 얻어진다.’라는 견해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 ― 고정관념의 타파 →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불교’의 선언

• 부처님을 따라 배울 때 깨달음에 필요한 시간
 
MN 26-덫 경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의 두 가지 구함 → 성스러움을 구하는 자의 두 가지 할 일 ― 법담(法談)이거나 성스러운 침묵
• 성스럽지 못한 구함(anariyā pariyesanā) ― 재생의 조건(upadhi)을 구하는 것
• 성스러운 구함(ariyā pariyesanā) ―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

• 성스러운 침묵-구함의 실천적 방법 ― 구차제주(九次第住)
MN 36-삿짜까 큰 경  • 부처님의 제자들은 심(心)은 닦지만 몸은 닦지 않지요? → 몸도 닦고 심(心)도 닦는 것으로의 깨달음의 과정

• 혼란한 자와 혼란하지 않은 자

• 몸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MN 100-상가라와 경  • 부처님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방법

• 신(神)은 있습니까? 



2. 깨달음의 과정에 대한 서술의 차이


【A】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 출가의 이유 ― 경의 주제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제시됨.


【B】 『출가(그런 나는 나중에~)로부터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를 거쳐 우루웰라의 장군총에 다다름(‘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앉았다.)』 


출가의 공통된 이유 ―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 이렇게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


【C】 『세 가지 비유(나에게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소유의 삶])로부터 고행(苦行) 그리고 함께하는 다섯 비구의 떠남에 이어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까지』


【D】 『깨달음(내가 성취한 이 법은~)부터 범천의 요청을 거쳐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만나고 설득하기(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까지』 


【E】 『설득된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교육하는 과정』 


  MN 85-보디 왕자 경  MN 26-덫 경  MN 36-삿짜까 큰 경  MN 100-상가라와 경 
A         
B         
C    다른 서술  ● + 서술 부가   
D      ×  × 
E      ×  × 

 


Ⅱ.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의 분석 


1. 출가의 목적 ― 「ariyā pariyesanā 성스러운 구함 = kiṃkusalagavesī 무엇이 유익(有益)인지 구함


부처님의 출가 목적은 명확합니다. 위에 소개한 네 개의 경은 모두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 이렇게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kusala 즉 유익(有益)/선(善)은 무엇입니까? (MN 26-덫 경)은 성스러운 구함을 말하는데, 자신은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존재지만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태어남-늙음-병-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스러운 구함을 위해 출가하였는데, 이것을, 다른 경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kusala 즉 유익(有益)/선(善)은 슬픔과 오염으로 대표되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이라는 락(樂)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경이 많은 곳에서 말하는 이익과 행복의 실현이고, 이런 점에서 부처님을 ‘세상에서 윤회의 장막을 벗긴 아라한-정등각(arahaṃ sammāsambuddho loke vivaṭṭacchado)’이라고 부른다고 하겠습니다.


유사한 용례로는 「pabbajiṃ kiṃkusalānuesī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했다.」라고 말하는 (DN 16.35-대반열반경, 수밧다 유행승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유익(有益)과 무익(無益)을 선언한 분이어서 유익과 무익의 기준 위에서 상황에 맞게 잘 분별하여 말하는 분이라는 의미의 분별설자(分別說者)- vibhajjavādo)를 말하는 (AN 10.94-왓지야마히따 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깨달음의 과정 ―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는 과정


(MN 100-상가라와 경)은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 대해 ①전승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전승을 잇는 삼명(三明) 바라문과 ②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딱끼-위망시 그리고 ③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세 가지 부류를 설명하는데, 부처님은 ③의 부류에 속합니다. 이때,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기 위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아는 과정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을 소개합니다.


이전에 들어본 법 = ①과 ② → 성취의 끝에 닿는가? ― 아니요. →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 →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앎 → 성취의 끝에 닿음 → 범행의 근본을 공언


1) 삼매 수행


이런 목적을 가지고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는 먼저 두 명의 스승을 만나 삼매를 닦습니다. 첫 번째 스승인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두 번째 스승인 웃따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 (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한 스승입니다. 그런데 그 경지를 익히는 과정에서 수행자 고따마는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는 이 법을 알고[지(知)] 보면서[견(見)] 머문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분 스승이 전승을 잇는 삼명(三明) 바라문도 아니고, 오직 믿음에 의해 접근하는 딱끼-위망시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승이나 믿음에 근거하는 방법을 넘어선 법으로 성취의 끝에 닿고자 하였지만, 그들이 알고 본 법은 단지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로 이끄는 길에 불과하여 태어나지 않기 위한 출가의 목적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전에 들어본 법의 영역을 넘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의 영역에 접근하지만 지(知)와 견(見)이 낮아 깨닫지 못함 


• 깨달음의 지(知)-견(見) = 열반(涅槃)


이렇게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으로 이끄는 두 스승의 법에 대해 염오(厭惡)한 수행자 고따마는 떠나는데,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 즉 아직 알려지지 않은 길을 개척하여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알기 위한 과정의 출발입니다. 이렇게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기 위한 부처의 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익(有益)을 구하여 출가한 부처님을 교주로 하는 불교가 하늘에 태어나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이렇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


(MN 85-보디 왕자 경)은 ‘행복은 행복에 의해 얻어지지 않고 괴로움에 의해 얻어진다.’라는 고정관념의 타파를 주제로 하는데,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는 행복에 의해 행복을 얻는 가르침으로의 불교의 특징을 말해줍니다.


‘①물 위에 놓인 젖은 나무토막 → ②물 밖에 있는 젖은 나무토막 → ③물 밖에 있는 마른 나무토막’의 순서로 소유의 삶을 몸과 심(心)으로 떠나 머물면서[물 밖] 소유의 관심, 소유의 갈망, 소유의 열중, 소유의 갈증, 소유의 열기를 안으로 잘 버리고 잘 가라앉히면[마른 나무토막] 고행(苦行)을 하든[고(苦)] 하지 않든[락(樂)]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유입니다.


이때, 소유의 삶을 떠나고 안으로 잘 가라앉힌 상태는 욕(慾-소유)을 넘어 유(有-존재)의 영역에 듦 즉 삼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소유를 넘어 존재의 영역에 들면 고행(苦行)의 여부와 관계없이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깨달음이라는 락(樂-행복)이 ②괴로움에 의해서도 행복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행복은 ①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에 의해 얻어진다는 생각의 첫 번째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깨달음 이전 아직 고행을 시도하지 않은 때의 생각입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고행을 시도하지만, 고행 즉 고(苦)의 방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떠납니다. 그리고 사선(四禪)-삼명(三明)의 과정[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 즉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그래서 행복과 관련한 결론③괴로움이 아니라 행복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디 왕자의 바르지 못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부처님의 설명입니다. ― 「①고(苦)에 의한 락(樂)의 성취[인도의 고정관념] → ②고(苦)와 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관념의 1차 전환] → ③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체험적 결론]」의 과정으로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불교 수행’의 성립을 말해줌


두 분 스승을 떠난 뒤 깨달음의 과정에서 고행 이전에 소유의 삶과 관련한 세 가지 비유를 소개하는 데는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고행(苦行)


이 과정에서 고행(苦行)은 심(心)으로 심(心)을 억제하는 수행 한 단계와 숨을 멈추는 수행 다섯 단계 그리고 소식(小食)의 수행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확고한 노력에 의해 잊히지 않는 사띠는 확립되었지만, 앞의 둘은 몸이 진정되지 않고 뒤의 하나는 몸이 파괴되는 부작용 때문에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고(苦)에 의한 락(樂)의 성취 불가능]. 그래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라면서 고행(苦行)을 떠납니다. 


이때, 부처님은 심(心)으로 심(心)을 억제하는 수행 한 단계와 숨을 멈추는 수행 다섯 단계에 대해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나의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라고 회상하는데, (MN 36-삿짜까 큰 경)의 주제입니다.


4) 사선(四禪)-삼명(三明)[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에 의한 깨달음 


고행(苦行)을 떠난 뒤 깨달음을 위한 바른길이라고 판단한 초선(初禪)의 기억 가운데 ‘나는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不善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며 ‘③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의 길을 선택한 것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정관념의 극복].


그리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수행자 고따마를 보고 함께하는 다섯 비구가 실망하여 떠나는 것도 불교의 성립 과정에서 중요한 일화입니다. 덩어리진 음식을 먹고 몸을 회복한 수행자 고따마는 사선(四禪)-삼명(三明) 즉 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의 과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고,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라고 경은 설명합니다. 


이때, 부처님은 사선(四禪)과 삼명(三明)의 일곱 단계에 대해 ‘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나의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라고 회상하는데, (MN 36-삿짜까 큰 경)의 주제입니다.


한편,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와 고행 그리고 사선(四禪)-삼명(三明)에 의한 깨달음의 과정은 태어남-늙음-병-죽음-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의 성취 과정으로 묘사되어 불교의 목적-지향을 말해주는데, (MN 26-덫 경)의 주제입니다. 또한, (MN 36-삿짜까 큰 경)은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번뇌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데, 오염원인 번뇌가 버려져 오염이 없는 상태가 곧 열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자 고따마는 보살(菩薩)의 삶을 마감하고 부처가 됩니다. 이것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완전한 궁극의 경지를 성취해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부처님의 방법인데, (MN 100-상가라와 경)의 주제입니다.



Ⅲ.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의 분석 ―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은 뒤)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과정」


깨달음 이후 즉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과정은 (MN 36-삿짜까 큰 경)과 (MN 100-상가라와 경)에는 나타나지 않고 (MN 26-덫 경)과 (MN 85-보디 왕자 경)에만 나타납니다.


1. 부처님이 성취한 법 ― 「atakkāvacaro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섬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잡기(ālaya)를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와 열반(涅槃)의 두 가지 토대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을 설해도 사람들이 알기 어려울 것이기에 무관심으로 기울게 됩니다.


• atakkāvacara ↔ 잡기(ālaya)를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함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 삶


• 두 가지 토대 


①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 ― 잡기(ālaya)를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삶의 조건 관계

②열반(涅槃)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선 상태


2. 범천(梵天)의 권청(勸請)


깨달음을 성취한 뒤 심(心)이 법을 설함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기운 상황은 주목해야 합니다. 관심을 일으키지 않아 법을 설하지 않았다면 부처가 아니라 벽지불(辟支佛)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을 받은 부처님은 vihiṃsasaññī(폭력의 상(想)을 가진 자)를 극복하고 법을 설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들은 [오염된 생각으로부터 전에 마가다에 나타난 청정하지 못한 법에 대한]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폭력의 상(想)에 대해 잘 연습되지 않은 나는 사람들에게 뛰어난 법을 말하지 않았다.’입니다. 


세상은 폭력의 경향(vihiṃsasaññ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지만 세상은 깨달은 자를 상대로 부딪쳐오며 다툽니다. 바야흐로 깨달은 부처님은 세상이 부딪쳐 오는 현상에 잘 연습되어 있지 않아 아직 법을 말하는 실행에 들어서지 않았지만,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으로 세상을 살펴본 뒤 세상을 상대로 법을 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불사의 문이 열렸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향해 구원의 법을 설하는 스승(선서-무상조어장부-천인사)의 길로 나아가는데, 벽자불이 될 것인지 여래-아라한-정등각인 부처가 될 것인지의 경계선입니다.


3. 아지와까인 우빠까를 만난 일화


• 아지와까(ajīvaka) = 사명외도(邪命外道)― 결실 없음(akiriya)을 주장하는 막칼리 고살라의 일파.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기로 한 부처님이 그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지와까인 우빠까를 만난 일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스승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부처님은 스승도 대등한 자도 없는 아라한-위없는 스승-정등각을 선언합니다. 또한,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는 것으로의 전법륜(轉法輪-법륜을 굴림)을 선언하는데, 불교가 불사(不死)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번뇌의 부서짐의 성취를 통한 진정한 승리자를 다시 선언합니다.


4. 전법륜(轉法輪) ―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법륜(法輪)을 굴림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만나고 설득한 부처님은 법륜(法輪)을 굴리는데, 그 과정은 이렇게 묘사됩니다. ― 「왕자여, 나는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설득할 수 있었다. 왕자여, 나는 두 명의 비구를 가르치고, 세 명의 비구는 탁발했다. 세 명의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 명이 먹었다. 나는 세 명의 비구를 가르치고, 두 명의 비구는 탁발했다. 두 명의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 명이 먹었다.」


실망하여 떠난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깨달음을 인정하고 법을 듣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는 것을 경은 세 번의 거부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구른 법륜은 거침없이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깨달음으로 이끕니다.


함께하는 다섯 비구의 깨달음은 부처님의 깨달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재현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스승 없이 깨달은 부처님의 과정에 비하면 스승에 의해 길이 알려진 깨달음의 과정은 훨씬 쉽다고 해야 하지만 번뇌를 부수고 깨닫는 과정이 하룻밤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MN 85-보디 왕자 경)에서 보디 왕자는 부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질문하는데, 부처님은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춘 자라면 ‘칠 년 ~ 저녁에 가르침을 들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고, 아침에 가르침을 들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굴려진 법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SN 56.11-전법륜경)을 통해 법안(法眼)이 생기고, 이어서 (SN 22.59-무아상경)을 통해 아라한을 성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든 가르침의 근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륜이 굴려진 뒤의 상황을 두 개의 경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도움을 받은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의 형태로 각각 제시하는데, (MN 85-보디 왕자 경)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라고 하고, (MN 26-덫 경)은 「자신들이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태어남-늙음-병-죽음-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인 열반(涅槃)을 성취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시는 존재로 이끌리지 않는다.’라는 앎과 봄이 생겼다.」라고 합니다.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이 열반의 성취에 이어지는 태어남의 끝 즉 윤회(輪廻)에서의 벗어남이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MN 26-덫 경)은 이런 설명에 이어서 구차제주(九次第住)에 의한 번뇌들의 부서짐 즉 누진(漏盡)의 실천기법을 설명합니다. 성스러운 침묵의 실천으로 성스러운 구함을 실현할 것을 주제로 하는 이 경에서 부처님은 성스러운 침묵의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구차제주를 설명하고 함께 익힘으로써 제자들의 깨달음을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MN 26-덫 경)은 법륜의 내용으로 구차제주를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륜의 내용교리 측면에서 (SN 56.11-전법륜경)의 사성제(四聖諦)와 (SN 22.59-무아상경)의 「무아(無我) → 여실지견(如實知見) → 염오(厭惡)-이탐(離貪)-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두 가지 그리고 실천 측면에서 (MN 26-덫 경)의 구차제주로 구성된다고 하겠습니다.


※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은 「초선(初禪) → 제2선(第二禪) → 제3선(第三禪) → 제4선(第四禪) → 숙주명(宿住明) → 천안명(天眼明) → 누진명(漏盡明)」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때, 숙주명과 천안명은 깨달음을 위한 필요충분과정은 아닙니다. 깨달음은 누진(漏盡) 즉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실현됩니다. 제4선 위에서 진행되는 과정인데,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어지는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서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서 번뇌가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 즉 「초선(初禪) → 제이선(第二禪) → 제삼선(第三禪) → 제사선(第四禪) → 공무변처(空無邊處) → 식무변처(識無邊處) → 무소유처(無所有處)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상수멸(想受滅) - 누진(漏盡)」이 깨달음을 위한 필요충분과정인데, 구차제주입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부처님이 사선(四禪)-삼명(三明)의 과정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구차제주는 부처님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런 이해에 의하면, 사선(四禪)-삼명(三明)이 그대로 구차제주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MN 26-덫 경)에서 구차제주를 설한 것은 당신의 깨달음의 과정을 그대로 제자들의 깨달음을 위한 실천의 기법으로 이끈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Ⅳ. 부가된 주제들


[1] (MN 85-보디 왕자 경) ― 부처님을 따라 배울 때 깨달음에 필요한 시간


1. (MN 85-보디 왕자 경) ―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칠 년 동안 큰 스승인 여래에게 가르침을 받는 비구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왕자여, 칠 년은 그만두고 육 년 동안 … 오 년 동안 … 사 년 동안 … 삼 년 동안 … 이 년 동안 … 일 년 동안 … 일곱 달 동안 … 여섯 달 동안 … 다섯 달 동안 … 네 달 동안 … 세 달 동안 … 두 달 동안 … 한 달 동안 … 반달 동안 … 일곱 주야 동안 … 여섯 주야 동안 … 다섯 주야 동안 … 네 주야 동안 … 세 주야 동안 … 두 주야 동안 … 하루 주야 동안 … 하루 주야는 그만두고 이런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큰 스승인 여래에게 가르침을 받는 비구는 저녁에 가르침을 들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고, 아침에 가르침을 들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다.」


2. (DN 22.-대념처경)/(MN 10-대념처경) ―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사념처(四念處)를 이렇게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지금 여기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거나, 집착이 남아 있으면 불환자(不還者)의 상태[불환과(不還果)]이다.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렇게 육 년을 닦는 사람은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일곱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달을 …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지금 여기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거나, 집착이 남아 있으면 불환자(不還者)의 상태이다.」


3. (DN 25-우둠바리까 경) ― 「니그로다여,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한다. 칠 년을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바르게 출가한 위없는 목적인 범행(梵行)의 끝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니그로다여, 칠 년을 그만두고 육 년을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일곱 달을 …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 달을 … 칠 일을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바르게 출가한 위없는 목적인 범행(梵行)의 끝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4. (AN 10.46-삭까 경) ― 포살(布薩)과 관련해서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 ― 「그렇지만, 삭까들이여, 여기 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십 년을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백 년도 만 년도 십만 년도 온전한 행복을 경험하며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일래자(一來者)거나 불환자(不還者)거나 진실로 예류자(預流者)가 된다. 삭까들이여, 십 년은 그만두고 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구 년을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 팔 년을 … 칠 년을 … 육 년을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열 달을 … 아홉 달을 … 여덟 달을 … 일곱 달을 …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 달을 … 열 주야를 … 아홉 주야를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 여덟 주야를 … 일곱 주야를 … 여섯 주야를 … 다섯 주야를 … 네 주야를 … 세 주야를 … 두 주야를 … 하루 주야를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백 년도 만 년도 십만 년도 온전한 행복을 경험하며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일래자(一來者)거나 불환자(不還者)거나 진실로 예류자(預流者)가 된다.」


[2] (MN 26-덫 경) ― 성스러운 침묵 →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두 가지 할 일이 있으니, 법담(法談)이거나 성스러운 침묵이다.」


1. (MN 26-덫 경) ― 성스러운 구함을 위한 성스러운 침묵에 대한 구체적 방법으로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마라의 덫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이끄는 실천으로의 구차제주를 설함 → 실천 측면에서의 전법륜(轉法輪)의 내용


2. (AN 9.4-난다까 경) 


• 부처님 ― 성스러운 침묵에 대해 설명 → 「 비구가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고 내적인 심(心)의 삼매를 얻고 높은 지혜에 의한 법의 위빳사나를 얻을 때, 이렇게 그는 그 요소에 의해 마땅해진다.」


• 난다까 존자 ― 법담(法談)에 대해 설명 → 「때맞춰 법을 듣고 때맞춰 법을 토론하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3. (SN 21.1-꼴리따 경) ― 성스러운 침묵이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에 의한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 즉 제2선 이후의 삼매의 과정인 것을 알려줌 →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성스러운 침묵에서 방일하지 말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진정시켜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집중하고,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도반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3] (MN 36-삿짜까 큰 경) ― 신(身)을 닦음과 심(心)을 닦음


1. (MN 36-삿짜까 큰 경) ―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에서 의미를 설명함


신(身)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2. 신(身)을 닦고 계(戒)를 닦고 심(心)을 닦고 혜(慧)를 닦은 자


1) (SN 35.110-바라드와자 경) ― 젊고 어린 비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실천하고, 오랫동안 행하게 하는 원인-조건


① 어머니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어머니라는, 누이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누이라는, 딸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딸이라는 심(心)을 유지해야 한다.


→ 심(心)은 갈망하는 것, 다른 원인-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② 부정관(不淨觀) ― 발바닥으로부터 올라가며, 머리카락으로부터 내려가며, 이 몸에 대해 피부의 경계를 채우는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은 비구에게는 쉽지만 닦지 못한 비구에게는 어려움, 다른 원인-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③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며 머물러야 한다.


2) (AN 3.101-소금 종지 경) ― 사소하게 지은 악업도 곧바로 지옥으로 이끄는 사람과 그만큼 사소하게 지은 악업이 지금여기에서 경험되는 사람


①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하찮고 작은 존재여서 작은 것에 의해서도 괴롭게 머무는 사람 → 사소하게 지은 악업도 곧바로 지옥으로 이끎


②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은 하찮지 않고 큰 존재여서 무량하게 머무는 사람 → 사소하게 지은 악업은 지금여기에서 경험되어 아주 조금도 보이지 않음


3) (AN 5.79-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3) ― 미래에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비구들에 의한 법(法)과 율(律)의 오염에 대해 알고, 버리기 위해 정진해야 함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① 구족계(具足戒)를 주고 교육하지 못함 → 이런 구조의 전승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② 의지(依支)를 주고 교육하지 못함 → 이런 구조의 전승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③ 법에 대한 이야기, 교리문답 이야기를 설하고, 나쁜 법에 빠져 있는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④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진, 세상을 넘어선, 공(空)에 일관된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듣지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심(心)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지은 것이고 아름다운 문자와 표현을 가진 시이고 외도의 제자들에 의해 말해진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심(心)을 일으킬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⑤ 장로 비구들은 풍족하게 살고, 해이하고, 들어갈 때는 앞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 그들의 뒷사람들도 견해를 뒤따를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4) (AN 10.24-마하쭌다 경) ―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음 = 수행(修行)


비구의 말의 사실 여부는 탐(貪)-진(嗔)-치(癡)-화-원한-저주-횡포-인색-악한 질투-악한 원함이 억눌러 머무는 지의 여부로 판단해야 함


① ‘나는 이 법을 알고, 나는 이 법을 본다.’라고 앎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② ‘나는 몸을 닦았고, 계(戒)를 닦았고, 심(心)을 닦았고, 혜(慧)를 닦았다.’라고 수행(修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③  ‘나는 이 법을 알고, 나는 이 법을 본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戒)를 닦았고, 심(心)을 닦았고, 혜(慧)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수행(修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4] (MN 100-상가라와 경) ― 신(神)은 있습니까?


1. (MN 100-상가라와 경) ― 「“참으로, 고따마 존자시여, 신(神)은 있습니까?”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 “고따마 존자시여, ‘신은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라고 존자는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공허한 거짓이 아닙니까?” “바라드와자여, ‘신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신은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원인과 함께 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현명한 사람은 ‘신은 있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는다.” “그러면 왜 고따마 존자는 저에게 첫 번째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은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고귀한 사람들에 의해 동의된 것이다.”」

 

2. (MN 90-깐나깟탈라 경) ― 「“그런데 대덕이시여, 신은 있습니까?” “대왕이여, 왜 그대는 ‘그런데 대덕이시여, 신은 있습니까?’라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그 신들이 여기(인간 세상)로 오는 것인지요,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인지요?” “대왕이여, 거슬림이 있는 그 신들은 여기로 오고, 거슬림이 없는 그 신들은 여기로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