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of Innovation

부처님의 삶

한국붇다와다불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Ⅲ. 출가 이전, 재가자 때를 소개하는 경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6-01-18 16:29

본문

page 5) 고따마 부처님의 삶 ‒ Ⅲ. 출가 이전, 재가자 때를 소개하는 경들


탄생 이야기에 이어 출가 이전, 재가자로서의 삶의 과정은 많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만, 왕자로서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누렸으나 그런 소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삶을 지향하여 수행으로 연결되는  과정 정도로 몇 개의 경에서 나타납니다. 

 

※ 부처님의 재가자 시절 일화를 대표하는 사건은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따마 부처님의 일화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다만, 최초의 부처님인 위빳시 부처님의 일화로 나타나는데,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계보의 형성의 관점에서 보아 원용한 경우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네 번의 공원 나들이 ‒ 사문유관(四門遊觀) →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으로 나타날 뿐, 동서남북의 네 문을 나가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 늙음-병듦-죽음-출가자를 만나고서 돌아와 출가를 결심함

 

1. (MN 75-마간디야 경)


이 경에서는 ①드물게 나타나는 부처님의 출가 전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또한, ②과거 부처님들이 읊은 게송도 발견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아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에 대한 예시가 있는데, 「오랫동안 나는 이 심(心)에 의해 속고 기만당하고 부추겨졌다[dīgharattaṃ vata, bho, ahaṃ iminā cittena nikato vañcito paluddho]」라고 하여 오온(五蘊)에 집착하여 오취온(五取蘊)이 되어서는 이렇게 형성된 오취온(五取蘊)을 아(我)로 착각한 삶에 의해 괴로움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해 줍니다.


(*) yamakasuttaṃ (SN 22.85-야마까 경)은 오취온(五取蘊)을 아(我)로 착각하는 것을 살인자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ahaṃ pubbe agāriyabhūto samāno 내가 전에 재가자였을 때’라는 문장으로 출가 이전의 삶을 소개하는데, 세 개의 궁전에서 등 화려하고 풍족한 삶에서 매력보다는 위험을 보았다는 관점입니다.


“전에 재가자였을 때, 마간디야여, 나는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 즉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안으로 인식되는 색들, … 이로 인식되는 성들, … 비로 인식되는 향들, … 설로 인식되는 미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신으로 인식되는 촉들이 만들고 부여한 것을 즐겼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런 나에게 세 개의 궁전이 있었습니다. ― 하나는 겨울용이었고, 하나는 여름용이었고, 하나는 우기용이었습니다. 마간디야여, 나는 우기의 넉 달 동안에는 우기용 궁전에서 여자로만 구성된 악사들에 의해 섬김을 받으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중에 소유의 삶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소유의 애를 버리고 소유의 사유의 열기를 제거하고 갈증에서 벗어나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렀습니다. 나는 소유의 삶에 대한 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유의 애에 의해 삼켜지고, 소유의 사유의 열기에 의해 불타고, 소유의 삶을 수용하는 다른 중생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의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거기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마간디야여, 천상의 행복을 넘어서서 머무는, 소유의 사유와도 다르고 불선법들과도 다른 그 기쁨 때문에 저열한 즐거움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재가자였을 때 소유의 삶에서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소유의 애를 버리고 소유의 사유의 열기를 제거하고 갈증에서 벗어나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렀는데, 천상의 행복을 넘어서서 머무는, 소유의 사유와도 다르고 불선법들과도 다른 그 기쁨 때문에 저열한 즐거움을 부러워하지 않았고 거기에서 즐거워하지 않음 즉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렀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 초선 ‒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2. (MN 36-삿짜까 큰 경)/(MN 85-보디 왕자 경)/(MN 100-상가라와 경)에서 고행이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확인한 수행자 고따마는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삭까 족의 행사에서 시원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있을 때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렀던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일까?’라고 생각합니다. 


삭까 족의 행사에서 초선을 성취해서 머문 일화는 다른 경에서 발견되지 않는데, (MN 75-마간디야 경)이 소개하는 재가자 때의 이야기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AN 3.39-섬세하게 양육됨 경)


이 경은 PTS본에서는 <편안함 경>과 <자부심 경>으로 나누어 결집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의 말미에 있는 게송은 이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경험을 설하는 게송인데, (AN 5.57-반복 숙고해야 하는 경우 경)에 반복됩니다. 그래서 (AN 5.57-반복 숙고해야 하는 경우 경)또한 부처님의 이야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에서도 부처님의 재가자 때의 삶은 화려하고 풍족했지만, 늙음과 병과 죽음의 자각에 의해 젊음과 건강과 삶에 대한 자부심은 버려지고 출가를 지향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섬세하게 양육되었고 아주 섬세하게 양육되었고 지극히 섬세하게 양육되었다. 비구들이여, 나의 아버지는 거처에 연못을 만들게 했다. 한곳에는 청련(靑蓮)이 피었고, 한곳에는 홍련(紅蓮)이 피었고, 한곳에는 백련(白蓮)이 피었는데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까시의 백단향이 아닌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모자도 까시의 것이었고 외투도 까시의 것이었고, 하의도 까시의 것이었고, 상의도 까시의 것이었다. 비구들이여, ‘추위, 더위, 풀, 먼지, 이슬과 닿지 않도록.’이라며 밤낮으로 내게 하얀 일산이 씌워졌다. 


비구들이여, 나에게 세 개의 궁전이 있었다. — 하나는 겨울용이었고, 하나는 여름용이었고, 하나는 우기용이었다. 비구들이여, 나는 우기의 넉 달 동안에는 우기용 궁전에서 여자로만 구성된 악사들에 의해 섬김을 받으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는 하인과 일꾼들에게 묶은 쌀로 지은 죽을 음식으로 주었지만, 나의 아버지 집에서는 좋은 쌀로 갓 지은 밥을 주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호화로움을 갖춘 나에게 이런 섬세한 양육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기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늙기 마련이고 늙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늙은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젊음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병든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기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병들기 마련이고 병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병든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고. 비구들이여,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건강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죽은 사람을 보고 ‘참으로 나도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자기에게 적용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나도 또한 죽기 마련이고 죽음을 극복하지 못했으면서 만약 다른 죽은 사람을 보고 곤란해하고 부끄러워하고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라고. 내가 이렇게 숙고했을 때, 삶에 대한 자부심은 완전히 버려졌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자부심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젊음의 자부심, 건강의 자부심, 삶의 자부심이다. 비구들이여, 젊음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의(意)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의(意)로 나쁜 행위를 하고서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난다. 건강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 삶의 자부심을 가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의(意)로 나쁜 행위를 한다.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고 말로 나쁜 행위를 하고 의(意)로 나쁜 행위를 하고서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젊음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건강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 삶의 자부심을 가진 비구는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다.


병드는 것이고 늙는 것이고 죽는 것

그런 성질을 가진 중생들인 범부는 다른 자를 꺼린다.


이런 법에서 만약 내가 그를 꺼린다면,

나의 이런 머묾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이렇게 머물면서 나는 법 있음을 알고서

병 없음과 젊음과 장수에 대한 자부심을 극복하였다.


출리(出離)에서 안온(安穩)을 보았나니

그런 나는 열반을 추구하면서 정진한다.


내가 지금 소유의 삶을 즐기는 것은 적당치 않으리.

되돌아감이란 없을 것이며 범행을 목표로 하는 자가 될 것이다.

 

prv.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