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of Innovation

부처님의 삶

한국붇다와다불교 홈페이지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의 부처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26-01-18 16:27

본문

 

page 2) 과거의 부처님


◐ 과거의 여섯 부처님


부처님의 출현은 이렇게 고멸로 이끄는 법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긴 법들은 때로 조건들이 변화 때문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그 법을 되살려 세상에 알리는데, 새로운 부처의 출현입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부처님들의 출현은 불교의 역사인데, 지금의 부처인 고따마(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여섯 부처님의 출현이 있었습니다. 


; 위빳시-시키-웻사부-까꾸산다-꼬나가마나-깟사빠 부처님


; 주제의 확장 ‒ 「과거의 여섯 부처님」 참조


1. 율장과 4부 니까야에 나타나는 과거 여섯 부처님의 용례


1) 과거의 여섯 부처님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 율장 빠라지까 웨란자 이야기-(DN 14-대전기 경)-(DN 32-아따나띠야 경)

; (SN 12.4-위빳시 경)/(SN 12.5-시키 경)/(SN 12.6-웻사부 경)/(SN 12.7-까꾸산다 경)/(SN 12.8-꼬나가마나 경)/(SN 12.9-깟사빠 경) & (SN 12.10-고따마 경)


2) 과거의 세 부처님이 나타나는 경우 ‒ 까꾸산다/꼬나가마나/깟사빠 부처님

; (SN 15.20-웨뿔라 산 경)


3) 과거 부처님이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 시키 부처님 ‒ (SN 6.14-아루나와띠 경)/(AN 3.81-소천세계 경)

; 웻사부 부처님 ‒ 웻사부 부처님의 용례는 독립적인 경전을 통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웻사부라는 이름은 (DN 19-마하고윈다 경)에서 왕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 까꾸산다 부처님 ‒ (MN 50-마라 견책 경)

; 꼬나가마나 부처님 ‒ 꼬나가마나 부처님의 용례는 독립적인 경전을 통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 깟사빠 부처님 ‒ pārājikakaṇḍaṃ, 4. catutthapārājikaṃ, vinītavatthūddānagāthā/vinītavatthu/(SN 19.12-똥을 먹는 자 경)/(SN 19.17-나쁜 비구 경)/(SN 19.21-나쁜 사미니 경)/(MN 81-가띠까라 경)/(SN 1.50-가띠까라 경)/(SN 2.24-가띠까라 경)/(SN 48.57-사함빠띠 범천 경)/(AN 5.180-가웨시 경)


※ (MN 81-가띠까라 경)은 고따마 부처님이 깟사빠 부처님에게서 출가한 제자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위빳시 부처님에서 고따마 부처님까지 일곱 부처님이 모두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점을 유추게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위빳시 부처님의 깨달음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이어지면서 동일한 깨달음에 의한 일곱 부처님의 계보가 형성되고, 이것이 불교의 역사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 (DN 14-대전기경(大傳記經))의 구성


1) 이전의 삶과 관련한 법의 이야기➀


“비구들이여,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에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지금으로부터 31겁 전에 시키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마찬가지 31겁 전에 웻사부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이 상서로운 겁에 까구산다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이 상서로운 겁에 꼬나가마나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이 상서로운 겁에 깟사빠 세존-아라한-정등각이 세상에 출현했다. 비구들이여, 이 상서로운 겁에 지금의 세존-아라한-정등각인 내가 세상에 출현했다. 


2) 칠불의 태생과 가문 등을 상세히 설함


  위빳시  시키  웻사부  까꾸산다  꼬나가마나  깟사빠  사꺄무니 
태생 & 가문  끄샤뜨리야  끄샤뜨리야  끄샤뜨리야  바라문  바라문  바라문  끄샤뜨리야 
성(姓)  꼰단냐  꼰단냐  꼰단냐  깟사빠  깟사빠  깟사빠  고따마 
수명의 기준  8만 년  7만 년  6만 년  4만 년  3만 년  2만 년  백 년 안팎 
깨달음 장소  빠딸리 나무
아래
 
뿐다리까 나무
아래
 
살라 나무
아래
 
시리사 나무
아래
 
우둠바라 나무
아래
 
니그로다 나무
아래
 
앗삿타 나무
아래
 
두 상수제자  칸다-띳사  아비부-삼바와  소나-웃따라  위두라-산지와  비요사-웃따라  띳사-바라드와자  사리뿟따-목갈라나 
제자들의 모임 :
모두가 번뇌 다한 자
 
모임1) 680만,
모임2) 10만,
모임3) 8만 
모임1) 10만,
모임2) 8만,
모임3) 7만
모임1) 8만,
모임2) 7만,
모임3) 6만 
하나의 모임 4만  하나의 모임 3만  하나의 모임 2만  하나의 모임 1250 
시자  아소까 비구  케망까라 비구  우빠산나까 비구  붇디자 비구  솟티자 비구  삽바밋따 비구  아난다 비구 
1)아버지
2)어머니
3)왕
4)수도 
1)반두마 왕
2)반두마띠 왕비
4)반두마띠 
1)아루나 왕
2)빠바와띠 왕비
4)아루나와띠 
1)숩빠띠따 왕
2)야사와띠 왕비
4)아노빠마 
1)악기닷따 바라문
2)위사카 바라문녀
3)케마
4)케마와띠 
1)얀냐닷따 바라문
2)웃따라 바라문녀
3)소바
4)소바와띠 
1)브라흐마닷따 바라문
2)다나와띠 바라문녀
3)끼끼
4)와라나시 
1)숫도다나 왕
2)마야 왕비
4)까삘라왓투 


; 법의 요소가 잘 꿰뚫어졌기 때문 또는 신들도 여래에게 이 의미를 말해주었기 때문에 상세히 기억함


3) 이전의 삶과 관련한 법의 이야기➁ ‒ 위빳시 부처님의 일대기 → 대전기경이라는 이름


; 태생과 가문 등을 다시 설명


; 태어남에 대한 이야기(보살의 법다움) → 여기서 위빳시 부처님의 경우로 설명되는 법다움은 (MN 123-놀랍고 신기한 것 경)에서 그대로 고따마 부처님의 법다움으로 반복 설해짐


; 서른두 가지 대인상(三什二相)을 갖추었음 → (DN 30-삼십이상경) 참조


; 위빳시(vipassī)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  ‒ ➀왕자는 눈을 깜박이지 않고 본다. ➁왕자는 바른 방법으로 면밀하게 판결한다.


; 세 개의 궁전에서 삶 → (DN 14-대전기경)-위빳시 부처님의 일화, (MN 75.1-마간디야 경)/(AN 3.39-섬세하게 양육됨 경)-고따마 부처님의 일화 

☞ https://buddhavada.ivyro.net/bbs/board.php?bo_table=buddhavada04&wr_id=6

 

; 네 번의 공원 나들이 ‒ 사문유관(四門遊觀) →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으로 나타날 뿐, 동서남북의 네 문을 나가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 늙음-병듦-죽음-출가자를 만나고서 돌아와 출가를 결심함


; 출가 → 8만4천의 사람들이 따라서 출가하였으니 나중에 보살은 따로 혼자의 길을 감


; 외딴 곳에 가서 홀로 머무는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 ‘참으로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 이 존재는 태어나고, 늙고, 죽고, 또 윤회하여 태어난다. 그러나 늙고 죽는 이 괴로움의 해방(解放)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언제나 늙고 죽는 이 괴로움의 해방(解放)이 꿰뚫어 알려질 것인가?’라고.


⇒ 식 ~ 노사의 십지연기(十支緣起)로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 ‒ (SN 12.65-도시 경)과 같은 구조


; 자라남과 소멸이라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안(眼-cakkhu)-지(知-ñāṇa)-혜(慧-paññā)-명(明-vijjā)-광(光-āloka)이 생김 = 깨달음 


; 오온의 자라남-줄어듦의 관찰로부터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함


;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이 됨


; 대범천이 설법을 요청함 → 고따마 부처님의 경우 = (SN 6.1-범천의 요청 경)


; 누구에게 가장 먼저 법을 설할까? → 칸다 왕자와 띳사 궁중제관의 아들


; 두 명의 상수제자 ‒ 최초의 설법 : 「차제설법(次第說法) → 최상설법(最上說法)」 → 깨달음의 재현 ⇒ 고따마 부처님의 설법은 차제설법 없이 바로 최상설법으로 시작됨


; 두 상수제자의 출가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출가하여 깨달음을 재현하고, 따라서 출가한 8만4천 명도 위빳시 세존-아라한-정등각에게로 다시 출가하여 깨달음을 재현함


; 비구들에게 전법을 허락하고 칠불통계(七佛通戒)를 설함


4) 여기까지는 부처님이 법의 요소를 잘 꿰뚫었기에 상세히 기억하는 내용이고, 이어서 신들이 알려준 동일한 내용도 소개함


; 윤회의 과정에서 가보지 못한 정거천을 방문 ‒ 무번천 → 무열천 → 선현천 → 선견천 → 색구경천의 정거천을 구성하는 다섯 하늘의 신들이 반복하여 부처님에게 알려줌


5) 결론 ‒ 과거의 부처님들에 대한 설명 → 완전히 꺼진 분, 희론을 끊은 분, 경로를 끊은 분, 윤회를 끝낸 분, 모든 괴로움을 극복한 분들 ⇒ (MN 123-놀랍고 신기한 것 경)/(SN 35.83-팍구나 질문 경)



◐ 불종성경과의 비교


쿳다까 니까야의 불종성경(佛種姓經-buddhavaṃsa)에 의하면, 사꺄무니 부처님(gotama-buddha)는 연등불(燃燈佛-dīpaṅkarabuddha)로부터 시작되는 부처님의 계보에서 25번째 부처님입니다. 연등불에게서 수기(受記) 받은 이래 [4아승지겁 + 10만겁] 동안 23명의 부처님에게서 반복적으로 수기를 받고 10바라밀(波羅蜜-pāramī)을 닦아 부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마지막에 위치한 여섯 명의 부처님이 위빳시 부처님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까지 이어지는 부처님들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역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SN 42.9-가문 경)에서 부처님은 역사의 한 단락을 91겁으로 제시합니다. 탁발의 역사를 91겁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최초의 부처님인 위빳시 부처님이 출현한 때로부터 산정되는 기간입니다. 부처님에 의하면, 이 기간이 부처님들이 때때로 출현했던 기간입니다. 사실 즉 존재의 실상(實相)[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대, 달리 말하면 문명(文明)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고따마 부처님’이란 호칭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gotamabuddha는 쿳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에 속하는 전기(傳記)[apadāna]에 gotamo buddho의 형태로 한 번 나타날 뿐 이외의 경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다만,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쿳다까 니까야 주석서에는 다수 나타납니다. 이외에 불종성경(佛種姓經)의 편집 과정에서 사꺄무니 부처님[sambuddho, gotamo sakyavaḍḍhano]에 대한 서술 부분의 제목으로 나타나고, 본문에서는 gotamasambuddho로 한 번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고따마 부처라는 표현은 경전에 나타나는 적극적인 용어는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십바라밀도 율장(律藏)[마하 위방가+비구니 위방가]와 4부 니까야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바라밀을 깨달음을 위한 수행 방법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라밀로 음역된 pārami는 완성(完成)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십바라밀[dasa pāramī](*) 또는 개별의 바라밀은 불종성경에 특화되어 나타나고, 간혹 개별의 바라밀에 대한 용례가 쿳다까 니까야의 다른 경전들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율장과 4부 니까야에는 용례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장과 4부 니까야의 공부 기준에서는 십바라밀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십바라밀 수행은 경에 없음


(*) 십바라밀(dasa pāramī) - dānaṃ sīlañca nekkhammaṃ, paññāvīriyañca kīdisaṃ. khantisaccamadhiṭṭhānaṃ, mettupekkhā ca kīdisā 보시-지계-출리-지혜-정진-인욕-진리-결정-자애-평정 바라밀


공부의 기준이 명확할 때 부처님에 의해 설명되지 않은 영역에서 부처님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불합리를 피할 수 있습니다.


[(SN 42.9-가문 경) 중에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가문들을 위해 동정을 말하고, 보호를 말하고, 연민을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촌장이여, 세존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문들을 위해 동정을 말하고, 보호를 말하고, 연민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기근이 들고, 곰팡이 때문에 풀잎으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곳에서 큰 비구 상가와 함께 유행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세존은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은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은 가문들을 해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촌장이여, 내가 기억하는 지금으로부터 91겁 동안에 나는 단지 요리된 음식을 공양한 것 때문에 파괴된 이전의 어떤 가문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부유하고, 큰 부를 가졌고, 소유한 것이 많고, 금과 은이 풍부하고, 토지와 도구가 풍부하고, 재산과 곡식이 풍부한 가문들은 모두 보시가 일으키고, 진실이 일으키고, 신봉/순종이 일으켰습니다. 촌장이여, 가문을 해치는 여덟 가지 원인과 여덟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①왕 때문에 가문은 해침 당합니다. ②도둑 때문에 가문은 해침 당합니다. ③불 때문에 가문은 해침 당합니다. ④물 때문에 가문은 해침 당합니다. ⑤저장해 둔 장소를 떠나거나, ⑥사업을 잘못 운영하여 실패하거나, ⑦재물을 뿌리고 낭비하고 없애버리는 가문을 망치는 자가 가문에 생깁니다. ⑧무상(無常)하다는 것이 여덟 번째입니다. 촌장이여, 이런 여덟 가지 원인, 여덟 가지 조건이 가문을 해칩니다. 촌장이여, 이런 여덟 가지 원인, 여덟 가지 조건이 있는데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세존은 가문들을 파괴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은 가문들의 불행을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 세존은 가문들을 해치기 위해 실천하는 분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촌장이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心)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입니다.”


한편, (MN 71-왓차 삼명 경)에서도 “왓차여, 내가 기억하는 지금으로부터 91겁 동안에 나는 한 사람을 외에는 아지와까로서 하늘로 간 사람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업(業)을 말하고 결실을 말하는 자였다.”라고 말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prv.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