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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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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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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피스님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6-01-1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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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6)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설해진 경들 ‒ Ⅱ. 경들


[Ⅰ] 완전한 열반 이후라고 직접 설해진 경전


1. (DN 10-수바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10&wr_id=1


; 한때 아난다 존자는 사왓티에서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는데, 세존이 반열반하고 오래지 않아서였다.


2. (MN 84-마두라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4


; “대왕이여, 그대는 나에게 귀의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내가 간 의지처인 세존에게로 가십시오.” “그러면 깟짜나 존자시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지금 어디에 머무십니까?” “대왕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지금 완전히 열반하셨습니다.”


3. (MN 94-고따무까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0_04


; “바라문이여, 그대는 나를 의지처로 삼지 마십시오, 내가 의지처로 삼은 오직 그분 세존을 의지처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우데나 존자여,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완전히 열반하셨습니다.”


4. (MN 108-고빠까목갈라나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1_08


;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한 사람의 비구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렇게 의지처가 없을 때, 누가 화합의 원인이 됩니까?”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없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있습니다. 법이 의지처입니다.”



[Ⅱ] 빠딸리뿟따에서 설해진 경전


(DN 16.8-대반열반경, 빠딸리뿟따에 성채를 건설함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3&wr_id=11)은 부처님이 빠딸리 마을(pāṭaligāma)을 방문하였을 때 도시를 건설 중이었다는 상황을 소개합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여, 고귀한 사람들이 터전으로 삼는 한, 무역이 계속되는 한, 이곳은 빠딸리뿟따(pāṭaliputta)라 불리는 가방을 열어젖히는 최고의 도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부처님 만년의 방문까지는 빠딸리뿟따가 아니라 빠딸리 마을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빠딸리뿟따라는 도시는 부처님 사후의 도시라고 보아야 합니다. 빠딸리뿟따에는 꾹꾸따 사원이 건립되었는데, 빠딸리뿟따에서 설해진 경은 꾹꾸따 사원을 무대로 합니다.


이 용례의 경들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는데, 돌아가신 이후이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아난다 존자가 용례의 중심이 되는데, 받다 존자와 함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받다 존자는 아난다 존자를 따르는 시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난다 존자와 받다 존자가 서로를 ‘도반’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1. (MN 52/AN 11.16-앗타까나가라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6_02


; 한때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에서 벨루와가마까에 머물렀다. 그때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가 어떤 할 일 때문에 빠딸리뿟따에 도착했다.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꾹꾸따 사원으로 어떤 비구에게 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그 비구에게 “대덕이시여, 아난다 존자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저희는 그분 아난다 존자를 뵙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장자여, 그분 아난다 존자는 웨살리의 벨루와가마까에 계십니다.” 그러자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는 빠딸리뿟따에서 할 일을 마치고 나서 웨살리의 벨루와가마까로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2. (MN 94-고따무카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0_04


; “바라문이여, 우리가 금과 은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우데나 존자에게 그것이 적절하지 않다면 우데나 존자를 위해 승원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나에게 승원을 지어주고자 한다면, 빠딸리뿟따에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지어주십시오.” “우데나 존자께서 저에게 상가에 보시할 것을 권하시니 저는 더욱 즐겁고 만족합니다. 우데나 존자여, 그런 저는 이런 지속적인 보시 그리고 이어지는 지속적인 보시로써 빠딸리뿟따에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짓겠습니다.” 그래서 고따무카 바라문은 이런 지속적인 보시와 다른 지속적인 보시로써 빠딸리뿟따에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지었다. 지금 그것은 ‘고따무키’라고 불린다.


3. (SN 45.18-꾹꾸따라마 경1)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1_02&wr_id=8


; 한때 아난다 존자와 밧다 존자는 빠딸리뿟따에서 꾹꾸따 사원에 머물렀다.


4. (SN 45.19-꾹꾸따라마 경2)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1_02&wr_id=9


; 빠딸리뿟따에서 설해졌다고만 나타나는데, 대화 상대가 받다 존자임


5. (SN 45.20-꾹꾸따라마 경3)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1_02&wr_id=10


; 빠딸리뿟따에서 설해졌다고만 나타나는데, 대화 상대가 받다 존자임


6. (SN 47.21-계(戒)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4_03&wr_id=1


; 한때 아난다 존자와 받다 존자는 빠딸리뿟따에서 꾹꾸따 사원에 머물렀다.


7. (SN 47.22-오래 머묾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4_03&wr_id=2


; 같은 인물, 같은 자리


8. (SN 47.23-쇠퇴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4_03&wr_id=3


; 같은 인물, 같은 자리


9. (AN 5.50-나라다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5&wr_id=3


; 한때 나라다 존자는 빠딸리뿟따에서 꾹꾸따 사원에 머물렀다.



[Ⅲ] 호칭에 의해 유추되는 경전


(DN 16.36-대반열반경, 여래의 마지막 말씀)은 부처님 사후 비구들 간의 호칭에 대해 지시합니다.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3&wr_id=39


그리고 아난다여,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 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건넌 장로는 신진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진 비구는 건넌 장로를 ‘대덕’이라거나 ‘존자’라고 불러야 한다.


아난다 존자와 마하깟사빠 존자의 호칭은 부처님 살아계신 동안에는 서로 ‘도반이여’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가 마하깟사빠 존자를 ‘대덕’ 또는 ‘존자’라고 호칭하는 경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마하깟사빠 존자가 아난다 존자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삼았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다 존자가 마하깟사빠 존자를 뒤따르는 사문의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는 이 경은 부처님 돌아가신 뒤의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SN 16.10-처소 경) : 아난다 ― 대덕 깟사빠시여 & 마하깟사빠 존자가 아난다 존자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함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5&wr_id=3

 

2. (SN 16.11-의복 경) : 아난다 ― ‘대덕 깟사빠시여’/마하깟사빠 존자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5&wr_id=4



[Ⅳ] 기타


1. 여래(如來)가 돌아가신 이후에 아라한을 찬탄하는 표현 ― 「paṇḍito viyatto(byatto) medhāvī bahussuto cittakathī kalyāṇapaṭibhāno vuddho ceva arahā ca’.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ṃ arahataṃ dassanaṃ hotī”ti」 ― (MN 84-마두라 경)/(AN 5.50-나라다 경)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이런 좋은 명성이 따른다.’는 문장은 독립적 상황을 언급하는 몇 개의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taṃ kho pana bhavantaṃ gotamaṃ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so imaṃ lokaṃ sadevakaṃ samārakaṃ sabrahmakaṃ sassamaṇabrāhmaṇiṃ pajaṃ sadevamanussaṃ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so dhammaṃ deseti ādikalyāṇaṃ majjhekalyāṇaṃ pariyosānakalyāṇaṃ sātthaṃ sabyañjanaṃ; kevalaparipuṇṇaṃ parisuddhaṃ brahmacariyaṃ pakāseti’.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ṃ arahataṃ dassanaṃ hotī”ti


그런데 참으로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그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이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를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합니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몇몇의 아라한을 지시하여


evaṃ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 — ‘paṇḍito viyatto(byatto) medhāvī bahussuto cittakathī kalyāṇapaṭibhāno vuddho ceva arahā ca’. sādhu kho pana tathārūpānaṃ arahataṃ dassanaṃ hotī”ti


이런 좋은 명성이 퍼져 있습니다. ― ‘그는 현명한 분, 성취한 분, 앎의 달인, 많이 배운 분, 훌륭하게 법을 설하는 분, 유익하게 말하는 분, 존경받는 분, 아라한이시다.’ 참으로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경들이 있는데, (DN 23-빠야시 경)/(MN 84-마두라 경)/(AN 5.50-나라다 경)입니다. 


특히, (MN 84-마두라 경)과 (AN 5.50-나라다 경)은 앞의 서술에서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설해진 경인 것을 알 수 있어서,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아라한을 존경하고 찬탄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DN 23-빠야시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10&wr_id=9)도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설해진 경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인데, 경은 부처님의 삶에 대한 묘사와 같은 방법으로 이렇게 시작합니다. ‒ ‘한때 꼬살라에서 오백 명쯤의 비구들로 구성된 큰 비구 상가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던 꾸마라깟사빠 존자가 세따뱌라는 꼬살라의 도시에 도착했다.’


한편, (SN 44.1-케마 경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10&wr_id=1)은 부처님 살아 계실 때 케마 비구니를 찬탄하는 경우인데, ‘현명한 분, 성취한 분, 앎의 달인, 많이 배운 분, 훌륭하게 법을 설하는 분, 유익하게 말하는 분’까지를 말하는 차이를 보여줍니다. 



※ 참고


(MN 124-박꿀라 경)은 ‘출가한지 80년 된 박꿀라 존자’의 일화입니다. 만약 이 80년의 출가 생활을 ‘이 법에 출가한 후 80년’이라고 이해하면 이 대화의 시점은 최소한 부처님 돌아가신 뒤 35년이 됩니다.


그러면 1차 결집의 시기가 부처님 돌아가시고 35년 이후라고 보아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경은 잘 해석되어야 합니다.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24. 바꿀라 경[출가한 자와 의지처를 가진 자 & 경의 서술자](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124) 참조 ☞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3_04&wr_id=2


; 번역 비교


“sattāhameva kho ahaṃ, āvuso, saraṇo raṭṭhapiṇḍaṃ bhuñjiṃ; atha aṭṭhamiyaṃ aññā udapādi. 


[초기불전연구원] “도반이여, 나는 출가하여 7일 동안은 빚진 사람으로 지역민들이 주는 공양을 먹었습니다. 8일째에 구경의 지혜가 일어났습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벗이여, 나는 출가한 뒤에 칠일 동안 채무자로서 나라의 탁발 음식을 먹었고, 팔일째에 나에게 궁극적인 지혜가 생겨났네.”


[bhikkhu bodhi] “Friend, for seven days after going forth I ate the country’s almsfood as a debtor; on the eighth day final knowledge arose.”


‘ahaṃ saraṇo’를 ‘빚진(sāņa) 나’라고 해석한 번역임. 그래서 경의 앞의 내용의 연장선에서 박꿀라 존자는 8일 만에 아라한 되고 이후 80년을 이 법과 율에서 살아왔다고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면 1차 결집은 부처님 돌아가신 뒤 최소 35년 이후에 결집되었다는 설명이 됩니다.


그러나 ‘ahaṃ saraṇo’를 ‘귀의한 나’라고 해석하면 경의 앞의 내용[외도의 출가]으로 깨닫지 못했지만, 부처님에 귀의한 뒤 8일 만에 깨달았다는 설명이 되고, 이런 경우는 1차 결집의 시기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죽음 이후에 설해진 경전들」에 속하지 않게 됩니다.


[근본경전연구회] “도반이여, 귀의한 나는 단지 7일 동안 사람들에게서 얻은 음식[나라의 구호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8일째에 무위(無爲)의 앎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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