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부처로서의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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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3) 고따마 부처님의 삶 ‒ Ⅸ. 부처로서의 45년
29살에 출가하고 35살에 깨달아 부처가 된 뒤 80살에 완전히 열반할 때까지 부처로서 산 45년은 부처님의 삶의 중심입니다.
“ekūnatiṃso vayasā subhadda, yaṃ pabbajiṃ kiṃkusalānuesī. vassāni paññāsa samādhikāni, yato ahaṃ pabbajito subhadda. ñāyassa dhammassa padesavattī, ito bahiddhā samaṇopi natthi. (DN 16.35-대반열반경, 수받다 유행승 이야기)
수밧다여, 29세에 나는 무엇이 유익함인지를 구하여 출가하였다. 수밧다여, 내가 출가자가 된 이래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법과 법의 영역을 실천했나니 이밖에는 사문도 없다.
그 45년은 부처로서 방법과 법의 영역을 실천한 기간인데, 법을 설하고 범행을 드러냄으로써 제자들의 모범상을 이끈 과정입니다.(DN 16.20-대반열반경, 부처님과 마라의 대화)
1. 진리의 선언
• (SN 4.4-마라의 덫 경1) → (SN 56.11-전법륜 경) → (SN 22.59-무아상 경) → (SN 4.5-마라의 덫 경2) → (SN 35.28-불탐 경)
• 삼법인-연기-오온-팔정도-사성제로 구성된 깨달음의 길을 이끎 ‒ 깨달음을 겨냥한 자 → 깨달음의 재현
• 보시-계-수행으로 구성된 공덕의 결실을 위한 토대가 되는 가르침을 설함(차제설법) ‒ 하늘을 겨냥한 자
2. 율(律)의 제정
출가자에 대한 생활 규범은 비구 227계(마하 위방가=비구 위방가)와 비구니 311계(비구니 위방가)로 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생활 규범은 왜 제정되었을까요? 부처님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많은 계목(戒目)을 지키라고 지시하셨을까요?
한편, 율장 웨란자 이야기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제자들을 위해 학습계율(sikkhāpada)의 제정과 계목(pātimokkha)의 암송을 부처님께 요청하지만, 부처님은 번뇌 때문에 생긴 어떤 법들이 상가에 나타날 때까지 학습계율을 제정하지 않고, 계목을 암송하지 않으며, 번뇌 때문에 생긴 어떤 법들이 상가에 나타날 때, 그 법들에 저항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제정하고, 계목을 암송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출가자를 위한 생활 규범은 선제적으로 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법들에 대항하기 위해 자기방어적으로 제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2_01_01&wr_id=3
●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학습계율을 제정한 두 가지 이유 ― vinayapeyyālaṃ (AN 2.201-202-230-율(律)의 반복)
① 상가의 뛰어남을 위하여, 상가의 편안함을 위하여
② 침묵하기 힘든 자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잘 행동하는 비구들의 편안한 머묾을 위하여
③ 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④ 지금여기에 속하는 원망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다음 생에 속하는 원망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⑤ 지금여기에 속하는 결점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다음 생에 속하는 결점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⑥ 지금여기에 속하는 두려움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다음 생에 속하는 두려움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⑦ 지금여기에 속하는 불선법(不善法)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다음 생에 속하는 불선법(不善法)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⑧ 재가자들을 연민하기 위하여, 악한 원함을 가진 비구들의 편 가름을 끊기 위하여
⑨ 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⑩ 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율(律)을 보조하기 위하여
● 학습계율의 최초 제정 paṭhamapārājikaṃ, sudinnabhāṇavāro(첫 번째 빠라지까, 수딘나 부문) 마무리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2_01_02&wr_id=3
‘bahūnaṃ kho tvaṃ, moghapurisa, akusalānaṃ dhammānaṃ ādikattā pubbaṅgamo 쓸모없는 자여, 그대는 많은 불선법(不善法)의 시작에 앞선 자이다.’
자기방어적으로 제정된 학습계율의 첫 번째 항목은 출가자인 수딘나 존자가 아이를 원하는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여 예전의 부인과 음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부처님은 이때부터 열 가지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들에게 학습계율을 제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열 가지 이유를 연(緣)하여 비구들에게 학습 계목을 제정할 것이다.
①승가의 뛰어남을 위하여,
②승가의 편안함을 위하여,
③침묵하기 힘든 자들을 억제하기 위하여,
④잘 행동하는 비구들의 편안한 머묾을 위하여,
⑤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⑥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을 저항하기 위하여,
⑦믿음이 없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하여,
⑧믿음이 있는 자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하여,
⑨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⑩율(律)을 보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런 학습계율을 암송해야 한다. ―
“yo pana bhikkhu methunaṃ dhammaṃ paṭiseveyya, pārājiko hoti asaṃvāso”ti. ‘음행을 저지른 비구는 빠라지까(바라이죄를 범한 자)이다. 함께 살 수 없다.’라고.
; 나는 불교를 믿는다(240423) ― 제4장 제자들[출가 제자1) 출가하면 좋은 점(사문과경-지와 견, 의성신) & 계율 제정의 이유](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6&wr_id=151
3. 식사 기준 ‒ 비구들의 식사 기준 변화(1일 3식 → 2식 → 1식)
1) (MN 66-메추라기 비유 경)
우다이 존자에게 떠오른 심(心)의 온전한 생각(cetaso parivitakko)을 부처님에게 말함 —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괴로운 것들을 물리쳐 주셨고,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즐거운 것들을 가져다 주셨다.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불선법(不善法)을 물리쳐 주셨고, 세존은 우리를 위해 많은 선법(善法)을 가져다 주셨다.”라고.
구체적 사안 ― 비구들의 식사 기준 변화 ― 저녁과 아침과 낮의 어긋난 때에 식사 → 부처님의 지시① ― 낮의 어긋난 때의 식사를 버릴 것 → 마음이 흔들리고 고뇌가 생겼지만, 세존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히리와 옷땁빠를 보면서 이렇게 낮의 어긋난 때의 식사를 버리고 저녁과 아침에 식사 → 부처님의 지시② ― 밤의 어긋난 때의 식사를 버릴 것 → 마음이 흔들리고 고뇌가 생겼지만, 세존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히리와 옷땁빠를 보면서 이렇게 밤의 어긋난 때의 식사를 버림 → 밤의 식사를 위한 위험이 해소됨
2) (MN 70-끼따기리 경) ‒ 저녁을 먹지 말라는 부처님의 지시②를 거부하는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두 비구를 같은 느낌이라도 불선법은 늘어나고 선법은 줄어드는 경우는 버려야 하고,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늘어나는 경우는 성취해서 머물러야 한다는 말씀으로 설득함
3) (MN 65-받달리 경) ― 한 번 음식을 먹음 즉 하루 한 끼의 식사에 대한 부처님의 지시②를 거부했다가 나중에 참회한 받달리 존자의 일화
4. 육식에 대한 불교의 입장 → 결점 없이 음식을 먹는 방법
(MN 55-지와까 경)은 남신자 가운데 사람을 기쁘게 함의 측면의 으뜸인 지와까 꼬마라밧짜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육식에 대한 기준의 제시에 이어 결점 없이 음식을 먹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 허용된 육식 ‒ 보이지 않은 것, 들리지 않은 것, 의심되지 않는 것
• 결점 없이 음식을 먹는 방법 ‒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음 → 식사의 초대를 받았을 때 ‘나에게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맛있는 탁발 음식을 공양하다니 참으로 좋구나!’라거나, ‘이후에도 나에게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맛있는 탁발 음식을 공양하게 되기를!’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 욕심내지 않고, 열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위험을 보면서, 해방을 위한 지혜를 가진 자로서 탁발 음식을 먹음 → 자기를 해치기 위해 의도하거나, 남을 해치기 위해 의도하거나, 둘 모두를 해치기 위해 의도하지 않음
⇒ 출가자가 결점 없이 음식을 먹는 방법은 이런 것이지 육식 여부가 결점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
; 윤회책 강의 251223) (제3부 제3장 몸으로 간다) (대담) 중생성(마음-느낌-업) ― 식물[채식주의자는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 스승에 의해 허용된 육식](해피스님) 참조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10&wr_id=54
4. 소소계에 대한 율의 해석 ‒ ‘아난다여, 상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 난 후에는 소소한 학습계율들은 폐지해도 좋다.’ (DN 16.36-대반열반경, 여래의 마지막 말씀)
; 소소한 학습계율들(khuddānukhuddakāni sikkhāpadāni) ‒ (DN 16.36-대반열반경, 여래의 마지막 말씀)/(AN 3.87-공부 경1)/(AN 3.88-공부 경2)/(AN 3.89-공부 경3) ‒ ‘사소한 학습계목[소소계(小小戒)]들을 범하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5. 데와닷따 이야기
율과 관련해서는 데와닷따를 주목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의 삶의 방식과 다른 방식을 주장하였는데, 부처님에 의해 거부됩니다.
나는 불교를 믿는다(240123) ― 제3장 가르침[핵심경전 - 8.지혜 경과 돌기둥 경(부처님과 데와닷따 & 慧에 의한 心의 실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에서 설명하였습니다. ☞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6&wr_id=133
(요약) 깨달음의 성취에 대해 부처님은 혜에 의한 심의 실천, 데와닷따는 심에 의한 심의 실천이라는 근본적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런 관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부처님에게서 멀어진 불교일수록 데와닷따의 실천과 궤를 같이하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와닷따가 나타나는 경들에서 율장의 용례들은 주로 교단의 분열을 획책한 사건을, 경장의 용례들은 주로 ①얻음-존경-명성 때문이라는 점과 ②죽은 뒤에 지옥에 태어나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또한, 깨달음의 길과 실천에서 시각을 달리하기 때문에 데와닷따는 계율에서 핑계를 만들어 상가를 분열하고 떠났다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AN 9.25-지혜 경)과 (AN 9.26-돌기둥 경)은 부처님과 데와닷따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깨달음의 성취를 위한 길과 실천에 대해 부처님은 혜(慧)에 의한 심(心)의 실천을 말하는데, 데와닷따는 심(心)에 의한 심(心)의 실천을 말함으로써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냅니다.
• 부처님 ― 혜(慧)에 의한 심(心)의 실천 → 깨달음이 성취되는 방법 = 참
• 데와닷따 ― 심(心)에 의한 심(心)의 실천 → 깨달음이 성취되지 않는 방법 = 거짓
※ 혜(慧)에 의한 심(心)의 실천의 의미 ―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 → 혜해탈이 받쳐주는 심해탈 → 부동(不動)의 심해탈
이런 관점은 주목해야 합니다. 부처님에게서 멀어진 불교일수록 데와닷따의 실천과 궤를 같이하는 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경은 불교 안팎에서 최악의 사람을 지시하는데, 불교 밖에서는 결실 없음(akiriya)을 주장하는 막칼리 고살라(AN 1.308-321-하나의 법, 세 번째 품), 불교 안에서는 데와닷따(AN 6.62-사람의 기능에 대한 앎 경)입니다.
데와닷따가 나타나는 경들은 많습니다. 율장(律藏)의 용례들은 주로 교단의 분열을 획책한 사건을 설명하고, 경장(經藏)의 용례들은 주로 ①얻음과 존경과 명성 때문이라는 점과 ②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지옥에 태어나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 (상가의 분열에 대한 학습계율)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2_02_10&wr_id=1
; 데와닷따의 제안 ― 죽을 때까지 ①숲에 머물 것, ②탁발 음식으로 살 것, ③분소의만 입을 것, ④나무 밑에 살 것, ⑤생선과 고기를 먹지 말 것
; 부처님의 입장 ― ①숲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숲에 머물게 하고, 마을 주변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마을 주변에 머물게 하라. ②탁발 음식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탁발 음식으로 살게 하고, 공양청을 원하는 사람은 공양청을 받게 하라. ③분소의 만을 입기를 원하는 자는 분소의 만을 입게 하고, 장자가 보시하는 가사를 원하는 자는 장자가 보시하는 옷을 입게 하라. 데와닷따여, ④나는 여덟 달 동안 나무 밑에 사는 것을 허락했고, ⑤보이지 않은 것, 들리지 않은 것, 의심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점에서 청정한 생선과 고기를 허락했다
데와닷따의 용례 경 가운데 가장 많은 용례는 「acirapakkante devadatte 데와닷따가 떠나고 오래되지 않은 때」의 용례인데, 이렇게 정리됩니다. ― 「얻음과 존경과 명성을 얻어도 즐거워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존경이 익어갈수록 준비되지 못한 가엾은 사람은 자신을 해칩니다. 이렇게 자신을 파괴하고 파멸로 이끌기 위해 데와닷따에게 얻음과 존경과 명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비구는 때때로 자신과 남의 실패와 성공을 돌이켜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덟 가지 비법(非法) 즉 얻음-잃음-명성-악명-공경-천대-악한 원함-악한 친구가 생겼을 때 거듭 극복하며 머물지 못한 데와닷따는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지옥에 태어나 일 겁을 머물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주제의 확장 ― (36)「데와닷따가 떠나고 오래되지 않은 때」☞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38
특히, (AN 9.26-돌기둥 경)은 (AN 9.25-지혜 경)과 대비되어 깨달음에 대한 부처님과 데와닷따의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보통은 데와닷따가 떠난 이유를 계율에 대한 시각차라고 이해하지만, 그보다는 여기서 보게 될 실천의 차이가 데와닷따가 부처님을 떠나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라고 보아야 합니다.
(AN 9.25-지혜 경)에서 부처님은 지혜에 의한 심(心)의 실천에 의한 깨달음을 말하면서 지혜에 의한 심의 실천으로 ‘나의 심(心)에 탐-진-치-탐과 함께하는 것-진과 함께하는 것-치와 함께하는 것이 없고, 나의 심(心)이 욕유(慾有)-색유(色有)-무색유(無色有)로 즉 중생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음을 설명합니다.
(AN 9.26-돌기둥 경)에서 데와닷따는 심(心)에 의한 심(心)의 실천에 의한 깨달음을 말하면서 심에 의한 실천으로
1) (AN 9.25-지혜 경)과 동일한 내용,
2) 바르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 만약 안(眼)으로 인식될 색(色)들이 강하게 안(眼)의 영역에 들어온다 해도 그것들은 심(心)을 소진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은 심(心)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음을 얻고, 또한, 무너짐을 이어본다.(여섯에 반복)
를 설명하는데, 2)는 (AN 6.55-소나 경)에서 아라한의 경지로 나타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4_06&wr_id=6
결국, 데와닷따는 아라한의 경지를 위한 길과 실천을 이끈다고 하면서 부처님과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런 길로는 그런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또한, 깨달음에 대한 길과 실천에서 데와닷따는 부처님과 시각을 달리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제자 상가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계율에서 핑계를 만들어 상가를 분열하고 떠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